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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시내산 율법 이전에는 죄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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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예루살렘 구도시내에 있는 서쪽벽 (흔히 통곡의 벽이라 함) 안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 서쪽벽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솔로몬 성전과 제 2차 성전이 무너진 후 성전을 지탱하는 외벽 역할을 하던 벽으로 ,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왕상 9:3) 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여전히 이 서쪽벽에 있다고 믿죠. (사진은 인터넷에 다운로드 받은 것입니다. 출처- http://www.trekearth.com/gallery/Middle_East/Israel/photo728166.htm)

율법은 시내산에서 주어졌다. 그렇다면 시내산 이전은 어떠하였는가? 율법이 없었는가? 족장들은 무엇을 하던지 율법적 구속을 받지 않았는가? 2000여년전 토라의 잉크 자국이 말라가고 있을때, 첫번째 성서 본문의 해석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호기심을 자아낼만한 답들을 해 주었다.

성서본문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존립을 위한 법적 체계를 시내산에서 받았다. 십계명 (출 20)을 비롯한 완전한 법전은 종교와 정치 생활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였고 이상적인 인간 존재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중세 당시 최고의 성서 주석가로 알려진 라쉬는 왜 성서의 시작이 십계명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지에 대해 의아심을 품었다. 만일 시내산의 계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그 순간의 장면이 연출되기 이전 70 장에 달하는 서론과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것은 네러티브적인 질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법적 질문에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만일 족장들이 율법에 무지했다면, 어떻게 율법을 따르는 일에 반응을 보일 수 있었겠는가? 시내산 계시의 완벽함은 그 이전 시대의 족장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성서 본문은 시내산 계시 이전에 도덕 문제를 다룬 초보 단계의 법전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언급을 하지 않는다.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 성서 해석자들은 알려진 율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개인들만을 하나님께서 벌하신다고 추정하였다. 이에 대해 초기 유대-기독교인이었던 바울보다 이 원리를 간결하게 밝힌 이는 없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롬 4:15) 이처럼, 당시 거의 모든 유대의 법 관계자들은 자의적으로 범한 죄와 의도적이지 않은 죄를 구분하였다. 자의적으로 범하는 죄는 분명히 비의도적인 죄보다 문제가 심각하였고 매우 심각하고 직접적인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사해 사본의 공동체 규율집 (공동체 조직을 위한 기본 문서)에서는 누구든지 자의적인 죄를 범하면 영구히 출교를 당하게 된다. 거룩한 공동체에 입회한 사람은 규율에 따라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만일 누구든지 거만함과 불성실한 태도로 모세의 율법중 하나라도 거스힌다면 그는 공동체에서 출교를 당할 것이고 재입회할 수 없다. (공동체 규율 8:21-22)

다른 자료들은 좀 완화된 입장을 취하지만 자의적인 죄를 범하지 않은 죄인에게 용서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레위의 증언" (외경 문서- 기원전 1세기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보좌옆에는 천사들이 있는데 이들은 의도적이지 않은 죄를 범한 의로운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속죄를 구한다 (레위의 증언 3:6). 이 유대의 가르침은 바울 자신의 증언과 비슷한 점이 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3)" 누가도 비슷한 말을 한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24, 참조 행 3:17 17:30).

초대 교회내의 이러한 개념에 대한 가장 분명한 증거가 쓰여진 본문은 히브리서이다. "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명렬한 불만 있느니라" (히 10:26-27). 초대 교회는, 이 본문이 그리스도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과 함게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에게 해당하는 본문이라고 이해를 하였다. 세례를 받을때 과거에 지은 죄는, 그 죄의 정도에 상관없이 용서를 받는다. 하지만 이 용서의 순간은 새로운 삶을 인도하는 관문으로 더 수준 높은 책임을 요구한다. 따라서 세례 이후에 거만한 욕구를 가지고 죄를 범하는 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린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이 다시 용서를 받을 수 있겠는가? 또는 그들이 범한 자의적인 죄로 인해 공동체로부터 출교를 당해야 하는가? 결국 교회는 온건한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 후 몇 세기 동안 뜨거운 감자가 되었었다.

랍비들 역시 성서 해석을 할때 이 고의의 교리 (the doctrine of intentionality)에 대해 고심을 하였다. "지식이 없는 신앙 상태에서는 의도적인 것이 없다" 라고 랍비들은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 왜 모세는 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첫번째 돌판을 깨뜨렸는가? 결국 모세는 황금 송아지앞에서 경배를 드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보고 순간적으로 놀라서 그만 돌판을 떨어뜨린 것이 아니었다. 본문은 분명하게 이를 밝힌다. "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출 32:19). 그가 들고 있던 돌판은 하나님께서 손으로 직접 쓰신 것이었다. (출 32:16)! 이런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한 랍비 미드라쉬에서는 이것을 다음가 같이 설명한다.

모세가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경배하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았을때, 그는 그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에게 율법이 적힌 돌판을 줄 수 있겠어? 그들에게 율법의 명령들을 따르도록 하는 의무를 지우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 돌판에 새겨진 율법 (제 1계명)대로 하늘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버려두어야 하나?

모세는 자신이 들고 있던 돌판을 던져 파괴시킴으로 백성들을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만일 모세가 그 율법판을 주었다면, 그들은 율법적 지식을 얻게 되고, 자신들이 범한 자의적인 죄로 인해 죄책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백성들의 죄는 결국 궁극적인 형별인 죽음으로 이어질것이 뻔하였다. 모세는 재빠르게 생각했다. 그의 발앞에 율법이 적힌 돌판을 깨뜨리므로서 이스라엘이 그 중한 죄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므로써, 이스라엘의 죄를 누그러뜨릴 수가 있었다.

자의적인 죄와 율법적 지식과의 관계를 통해 초기 성서 해석가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 시대때 범해진 극악 무도한 죄가 용서 받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족장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율법에 대해 책음을 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하였다.

이제 3가지 예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번째는 야곱의 아들 르우벤이다. 르우벤의 죄는 다음과 같다. "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창 35:22). 겨우 이것뿐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성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는다. (참고: 창 49:3의 야곱의 마지막 유언에서 르우벤을 꾸짖는 것을 볼 수 있다. "르우베나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즉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유언의 내용은 매우 부정적인 것이고, 훗날 장자권도 르우벤이 아닌 요셉에게로 넘어간다). 왜 르우벤은 처벌을 받지 않았는가? 빌하는 어떠한가? 그녀는 처벌받아 마땅히 처벌받았어야 했지 않는가?

유대인의 외경, 유빌레 ( the book of Jubilees)에서는 이 질문에 답을 준다. 흔히 다시 쓰여진 성서라고 불리는 유빌레는 정교한 해석을 덧붙여서 성서의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유빌레는 이렇게 말한다.

르우벤이 라헬의 시녀 빌하를 보았을때 그녀는 목욕중이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어느날 밤 그는 빌하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그녀가 홀로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했다. 그가 빌하와 함께 동침한 후, 빌하는 르우벤이 자신의 천막에서 잠을 잤다는 것을 알 수있었다. 빌하는 자신의 옷자리 끝부분을 들어올리고 르우벤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빌하는 무척이나 창피스럽게 여겼고 르우벤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르우벤은 도망을 쳤고, 빌하는 슬피 울며 이 일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야곱이 빌하에게로 왔을때, "저는 부정한 여인이 되었어요. 지난밤 르우벤이 저와 동침을 했어요. 나는 자고 있는 중이었고 알지 못했어요." 그 사건 이후 야곱은 더 이상 빌하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 (유빌레 33:2-9)

빌하는 알지 못했다. 르우벤이 야밤중에 빌하에게로 들어온 것이다. 빌하는 그녀의 남편 야곱 이외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빌하는 아주 무죄하였고, 그녀는 너무나 부끄러워했다.(라반 역시 야곱에게 비슷한 꾀를 부렸다.창 29:22-2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의도했던지 그렇지 않던지, 그녀는 결과적으로 잘못을 범한 것이다. 유빌레는 빌하가 사형선고를 받지는 않았지만 남편과 별거상태로 지내야만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일 빌하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에서 자유로운것은 아니다. 추정컨데, 르우벤은 빌하와 잠자리를 계획적으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벌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종류의 죄를 다루는 법이 시내산 이전에는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에 의햐면 르우벤의 죄는 처형감이다. 그런 죄는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유빌레는 다음의 성서 구절을 인용한다. " 그의 아버지의 아내롸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19).

왜 우리는 성서에서 르우벤의 처별에 대해 듣지 못하는가? 또 성서의 사건을 재 구성한 유빌레 조차도 르우벤의 처벌을 언급하지 않는가? 유빌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르우벤의 자신의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을때 그의 첩인 빌하를 취한뒤에도 죽임을 당치 않고 용서를 받았다. 법령, 형벌 그리고 율법은 당시 완벽하게 제정된 것이 아니었고 후대에 가서야 제정되었다. 그리고 이 법은 역사의 영구성처럼 영원한 법이다. (유빌레 33:15-16)

이것은 초기 유대 주석가들로부터 복잡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왜 빌하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태속에서 르우벤과 동침을 했다는 장구한 설명한 후에야 면죄부를 받았는가? 결국 율법이 아직 주어지지 아니한때라면 그녀는 어렵지 않게 면죄부를 받지 않았겠는가? 왜 빌하는 쉽게 풀려날 수 없었는가? 혹시 저자가 여자를 싫어해서인가?

유빌레는 왜 빌하가 르우벤처럼 쉽게 죄의 면제를 받지 못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성서 이야기, 유다와 다말 (창 38) 사건을 보자. 유다는 다말의 두 남편 (유다의 두 아들)이 죽은 후에 자신의 세번째 아들을 다말에게 주지 않는다. 유다는 세째 아들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레비레이트혼 (남편이 죽고 자식이 없을 때 죽은 남편의 형제나 최근 친자가 그 과부를 아내를 삼을 의무가 있다고 하는 유대 율법 - 신 25:5-10)에 의하면 유다는 반드시 셋째 아들을 다말과 결혼시켜야 했다. 유다가 이를 거부했을때 다말은 자신을 창녀로 변장하고 유다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그런식으로 다말은 임신을 하게 되고 유다는 다말을 죽이라고 명하지만 자신이 그 아이의 아비라는 것을 알고 이를 철회한다. "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림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엿느니라 유다가 이리되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나갈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창 38:24-26).

이것이 성서에 나온 이야기이다. 유빌레는 유다가 무엇에 근거하여 다말을 화형시키라고 했는지를 묻는다. 이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유빌레의 저자는 여인이 간음을 행하였을때 "화형을 시켜라" (유빌레 20:4)라고 아브라함의 입을 빌어서 말한다.

유빌레의 저자는 형벌을 여자에게만 적용하였는데 그 이유는 성서 본문의 구속력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 본문은 르우벤에 대한 그 어떤 형벌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다는 다말을 화형시키려고 한다. 이로 보건데 시내산 율법 이전에는 성적 문제에 있어서는 여자만이 형벌의 대상이었음이 확실하다. 시내산 율법 이후 성적 문제의 법 적용은 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빌레의 저자는 르우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법적 부재에 대한 언급보다는 빌하의 형벌 면제를 위한 몇가지 이유를 찾았어야만 했다. 따라서 미드라쉬는 빌하의 죄는 알지 못함과 비의도적인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즉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그녀는 자기 천막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르우벤이 아닌 남편인줄 알고 동침을 하였다.

세번째 예로 사해 사본중 다메섹 문서를 살펴보도록 하자. 쿰란에서 7개의 문서들이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은 유대 분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들이이었다. 이 모든 문서들은 조각들뿐이었지만 잘 보존된 문서가 약 50전에 카이로에 있는 한 회당에서 발견되었다.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는 초기 성서 석의를 하는 이들에게 문제를 던져 주었는데 이들은 매우 정교한 해결점을 찾았다. 십계명에 의하면 다윗은 분명히 두개의 게명을 범하였다. 첫째, 그는 밧세바와 간음을 행하였다 (삼하 11-12장), 둘째, 그는 신명기 17:17에서 분명히 금하고 있는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명령을 범하였다. 다윗은 이것들이 분명히 잘못이라고 알고 있었을텐데 왜 그는 처형을 당하지 않았는가? 다메섹 문서는 다음과 같이 답을 준다. 율법책은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유대왕 요시아 시대 (기원전 7세기)까지 봉해진 상태로 법궤에 보관되었다가 발견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왕하 22장). 따라서 율법은 일정한 수준에서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존재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죄는 경솔한 행위로 설명될 수 있고 따라서 그는 죄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다메섹 문서 5:5-6).

다메섹 문서는, 출 1:16에서 바로가 히브리 신파들에게 이스라엘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내린 명령에 대한 언급을 한다. 문서를 있는 그대로 읽으면 이스라엘의 고난은 바로의 악함에서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다멕세 문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이 심한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스라엘이 이런 고난을 마땅히 받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들의 손자들과는 전혀 다른 처우를 받았음을 언급한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매우 심각한 죄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벼운 형벌을 받았다. 반면 손자들은 훨씬 더 큰 고난을 받았다. 아들들의 가벼운 형벌을 고려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그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알지 못하는중 게명을 어기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비의도적인 실수에 대한 형벌을 받았다" (다메섹 문서 3:4-5). 그들은 율법에 대해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율법은 시내산에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자들 역시 시내산 율법 이전에 살았다. 무엇때문에 성서 본문은 손자들에게 더 무거운 형벌을 내렸는가? 다메섹 문서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집트에서 손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반하는 완고한 마음을 지녔다. 그들은 그들 눈에 보기 좋은대로 행하였다. 그들은 피를 마셨으며 이로 인해 남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다메섹 문서 3:8-9).

시내산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도 피를 마시는 것은 노아 홍수 이후에 철저히 금해진 금기 사항이었다 (창 9:4). 사실, 이것이 노아 율법중 하나로 불리는 것인데, 유대인이나 비유대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다메섹 문서의 저자는 바로가 이스라엘 아이들에게 내린 형벌을 정당화시킨다. 이스라엘의 손자들은 피를 마시지 말라는 분명한 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범하였기 때문에 죽음의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의 주석 방법, 즉 시내산 율법 제정 이전에는 어떻게 형벌과 형벌 면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이들은 두가지 종류의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어떤 이들은 죄를 범하고도 형벌로 인해 고통받지 않았다. 그들은 이러한 경우에 대해 그 죄들은 비의도적으로 행해졌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한 공공 법이 제정되지 않아서 무엇이 죄가 되는지 알지 못함) 그렇다면 시내산 율법 이전에도 몇몇 성서 인물들은 죄로 인해 처벌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서 주석가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다말을 화형시키려 한것과 이집트의 모든 장자 (동물 포함)의 죽음은 별개의 경우로 다루어야 하는데, 주석가들은 이 문제들을 일정 행위를 금하는 시내산 이전 율법을 만들어내거나 (그리고 이런 법을 아브라함과 같은 초기 족장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함), 시내산 이전에 주어진 몇개 안되는 성서의 금지 조항, 예를 들면 피를 마시는 것, 에 준해서 범죄 행위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Reference for this article: Anderson, Gray a. "Torah Before Sinai." Bible Review, Jun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