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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Story

스스로 분쟁하는 하나님의 나라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 12:25) 


교회들이 서로 경쟁한다면 사단이 감독으로 있는 사단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알지 못하게 조용히 그러나 즐겁게 춤을 춘다. 


귀신들을 내쫓고, 병자들의 병을 고치며 심지어 문둥병 환자의 병을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우리 주변에서 늘 보고 듣는 일이라면 이런 일들은 일상의 일부분이기에 놀라운, 혹은 신비스런 일이 아닐 것이다. 


신약 성서의 이야기들 중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분명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별히 예수의 사역중에는 치유와 축사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린 이야기들이 등장하며 지금이나 이런 일들은 "기적"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즉 흔히 보고 들을 수 없는일이다. 


군중들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는 사건들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다위의 자손, 즉 메시야가 아니라면 어찌 그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라고 이구동성으로 놀라며 예수의 뒤를 쫒았다. 아마 그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였던 메시야의 사역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나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 61:1)을 떠올렸을 것이며 예수의 사역중 일어나는 치유 사건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 성취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후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사진: 쥐염나무 열매


여기에 반대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그 자리에서 함께 있던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 역시 환자들이 치유받고 귀신들이 내쫓김을 당하는 것을 그들의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군중들의 반응과는 달리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들 내쫓는다고 속으로만 주장하였다. 어쩌면 겉으로 그들의 생각을 발설하기에는 주변 무리들이 눈이 무서웠으리라. 


이때,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 짧은 말씀을 하셨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스스로 분쟁하는 동네...스스로 분쟁하는 집마다 황폐해지고 서지 못하게 된다." 귀신의 힘의 귀신을 내어쫓는다면 사단의 왕국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 가운데 세워가는, 그리고 확장해 가는 세포(cell)와 같은 존재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세포들이 이 세상에 더 많이 존재하면 할 수록 그 나라는 확장되어 가며, 그 나라의 최고 목표인 영혼들의 구원은 더 속도를 낼 수 있다. 교회들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갖고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명이 분명하다면 교회들은 경쟁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이다. 축구로 말하면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필드에 서 있는 선수들이다. 




사진: 엉겅퀴



사진: 마른 엉겅퀴



사진: 엉겅퀴와 겨자풀 


같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반드시 같은 목적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팀워크 (Team work)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팀의 조직력이 약하거나 와해된다면 팀은 그 경기를 절대적으로 이길 수가 없다. 사단이 감독으로 있는 왕국의 조직력, 그리고 목적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영혼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빼앗기지 않는것! 이것이 사단이 감독으로 있는 나라의 절대적 목적이다. 


경기장에 나선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들은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그 자리에 서야 한다. 만일 두개 혹은 세가지 서로 일치되지 않는 목적들을 갖고 있다면 그 경기에서 패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교회의 목회자들은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공통 목적을 가지고 사역을 하며 교인들에게도 동일한 목적을 갖고 신앙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주변에 교회들이 개척되고 복음이 전해지는 것, 그리고 교회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며 함께 격려해주고 박수를 쳐주며 환영해야 하는 것이 숨을 쉬는것 이상으로 자연스런 반응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너무 이상적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사회 생활에서는 "경쟁" 이라는 말과 그 속에 담긴 의미가 현실속에서 행동으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동종의 가게들이 주변에 개업을 한다면 기존의 사업주들은 긴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동종의 가게 업주들과 협력하기는 쉽지 않다. 오래전애 사역하던 교회 주변에 작은 구멍가게 두개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한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가격을 내리니 다른 가게도 가격 인하를 대폭하였다. 그 가게들은 손님들을 상대방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스스로 제살깍기를 한 것이다. 손님들 입장에서야 싼 가격에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었겠으나, 가게 업주들은 마진이 적은 혹은 심지어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상대방과 경쟁을 한 것이다. 결국에는 둘다 망하는 것인줄을 모르고 말이다. 




사진: 물가에 심겨진 에셀 나무 


만일 교회가 이 두 가게 업주들처럼 다른 교회들과 경쟁한다면 교회와 세상 사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교회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목회자와 성들들이 반드시 뛰어넘어야 혹은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경쟁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또 다른 교회가 개척되고 성장하는 것을 보며, 함께 기뻐하고 춤을 추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여전히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또 다른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세상 가게들의 경쟁 관계로만 보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 스스로 분쟁하는 집들은 서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사단의 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