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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ish tradition & Yeshua

새해 - 로쉬 하사냐

아침에 메일함을 열어보니 전에 몇번 참석하였던 야다트 예슈아 회당에서 보내는 이메일이 보였다. 로쉬 하사냐 (유대력으로 새해)가 이번 주일이란다. 이스라엘을 떠난지 5년차가 되면서 내 마음은 유대 광야에 머물고 있으려 하나 보이지 않는 광야를 의도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면 안되는가 보다. 거실에 걸려있는 펜던트에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편 137:5)” 를 종종 읽어보면서도 혹이라도 내가 예루살렘을 잊지 않을까 하는 염려 알약을 복용할 때가 된듯 하다. 오랜동안 블러그에 글을 쓰지 못해서 마음도 불편하고 펜대, 아니 키보드를 누르는 손이 무딜대로 무뎌졌다... 야다트 예슈아에서 보내온 로쉬하사냐가 자극제가 되었을까? 전에 궁금하였던 것 한 가지! 성경에서 말하는 새해는 언제인가? 라는 질문으로 무뎌진 손감각을 갈아보련다. 


유대인들은 유대력으로 튀쉬레 월 첫날을 로쉬 하사냐, 즉 새해의 첫날로 지킨다. 

유대력으로 일곱번째 달인 튀쉬레 월 절기는 레위기 23:23-25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으리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민수가 29장은 좀더 길게 일곱째 달 초하루 절기 규례를 기록하는데 나팔을 불어 절기를 선포하고 속죄의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이 절기의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위 두 성경구절에서 “새해” 라는 말은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 나팔을 불고 노동을 하지 말고, 속죄제를 드리라는 것 뿐이다. 


랍비문학에 의하면 티쉬레 달 첫날은 쉬는 날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날은 세상이 창조된 날! 이 날은 하나님의 왕위 즉위식이 있었던 날! 이 날은 심판의 날! 이었다. 출애굽기 12장2절에는 החדש הזה לכם ראש חדשים ראשון הוא לכם לחדשי השנה  ( 이 달은 너희에게 달의 첫 날이 머리 (첫날)이 될 것이요, 너희에게 그 첫날은 해의 첫 날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의 첫날이 되는 그 달은 출 13:4에 보면, 아빕월은 에스더 3:7와 느 2:1에 니산월로 나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에스더 3:7에 בחדש הראשון הוא חדש ניסן (그 첫달이 되는 니산월) 이라 기록함으로 2차 성전시대에도 니산월(아빕월)이 정월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티쉬레 월 첫 날을 정월 초하루로 지키게 되었을까? 


티쉬레 달의 첫날을 로쉬 하사냐로 지케게 된 것은 고대 근동의 영향의 영향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고대 메소포타미야 지역은 가을의 시작인 Tashritu (타쉬리투, 그 뜻은 시작)과 봄의 시작인 Nisaanu (니산누, 히브리어 성서의 니산) 월 첫 날을 새해의 첫날로 지켰다. 고대 근동의 새해 절기인 Akitu- Festival (아키투 절기)는 니산누 달 첫날부터 시작해서 11일동안 지켰다. 이 절기는 바벨론의 신 마둑이  바다의 신 Tiamat 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서 왕의 자리로 돌아와, 성전에 앉아 오는 새해의 운명을 심판한다는 신화와 관련이 있다. 정리하면, 바벨론의 새해 절기는 봄 혹은 가을에 새해를 시작하고, 전쟁과 승리, 신의 즉위식, 심판 이라는 요소들을 포함한다. 


다시 성서로 돌아와서 고대 근동의 새해 절기 행사와 성서의 새해 절기 행사의 연관성을 찾아보자. 시 74편은 하나님이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피조물과의 전쟁, 세상의 창조, 하나님의 왕의 즉위식, 심판을 노래한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의 새해 절기와 매우 흡사한 요소들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9장에 나오는 나팔을 부는 것은 왕의 즉위식때 하는 행위이다. 이 나팔을 부는 것도 시 47편과 연관성이 있으며,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시 47편을 새해때 낭송한다. 


메소포타미아 아키투 절기 행사와 유대 전통의 로쉬 하사냐 절기 사이의 의미상 (세상의 창조. 왕위 즉위식. 심판)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튀쉬레 달 첫날을 새해의 첫날로 삼게 된 것이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쩌면 바벨론 유수 당시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영향을 받아서 새해를 튀쉬레 달에 지키기로 결정하였을 수도 있고, 니산월과 튀쉬레월, 두번의 새해를 지켰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새해의 개념과 성경의 해의 첫머리이며 달의 시작이 되는 날과는 개념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한편, 고대 유대인들은 네번의 새해를 지켰다. 그 첫번째는 니산월로 왕의 새해로 지켰으며, 이 때를 기준으로 왕의 통치 기간을 계산하였다. 두번째는 엘룰월로 이 달의 첫날, 짐승들의 십일조 (10번째 짐승을 십일조로 바침)를 드리는 날이었고 이 날을 새해의 첫날로 지켰다. 세번째로 튀쉬레월은 농사를 시작하는 새해의 첫달로 안식년과 희년을 이 달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켰다. 네번째로 쉬밧트월 15일로 이 날을 나무들의 새해로 (Tu BisSh’vat)로 지켰다. 


아므튼...유대인들의 시간은 로쉬 하사냐를 향해 째각거리고 있다. 새해 시작 한달전인 엘룰월부터 열심히 회개를 하며 새해 시작과 함께 10일간의 속죄 기간을 보내며 욤키푸르 (대속죄일)을 맞이한다. 어디나 마찬가지일까? 새해를 시작해때쯤되면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주어지는 365일을 시작한다. 새로운듯 하지만 얼마 못가는 NEW...어느덧 가을이 되었고 성급한 나뭇잎은 겨울준비라도 하라는듯 노란색으로 물들기전에 거리를 뒹굴고 있다. 15년이 낮설었던 날이 어제같은데 벌써 16년을 준비할 때이다... 새해가 새해될 수있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떠밀림속에 그 날을 맞이하기 때문이 아니다.  NEW 라는 말에 걸맞는 그런 삶을 살으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다... 그 분과 함께 날마다 새로운 날을 시작한다면 새해가 따로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