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은 고대 시대의 결혼 풍습을 엿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이삭의 결혼 이야기가 오늘날 결혼 방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우리의 부모 시대는 서로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결혼하지 않았던가? 이삭의 결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브라함은 자신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난 독자 이삭의 결혼을 위해 직접 자신이 며느리감을 찾아야 했지만, 그의 건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창 24:1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아브라함의 나이 많아 늙음에 대해서는 17장 17절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으리요", 18장 11절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21장 2절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라는 표현들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직접 며느리를 찾을 수 없기에 자신의 종인 엘리에셀을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에게로 보낸다.
사진: 이삭을 임신한 사라의 웃음
엘리에셀은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가 막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인에게 묻는다.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하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창 24:5). 엘리에셀의 질문에 대해, 어떤 이들은 여자가 종이 주인을 대신해서 올 경우에 여자가 거부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주인이 종을 자신을 대신해서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주인의 대리자로서 종은 주인의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에게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창 24:6). 또한 아브라함은 종에게 가나안 여인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찾지 말라고 이미 말하였다 (창 24:3-4). 이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가나안 여인들은 우상 숭배와 음란한 전통이 있었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여자들은 우상 숭배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가족내에서의 결혼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예를 들어, 민 36:6-7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 지파의 가족내에서만 시집을 가도록 명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나홀이 거주하는 아람 땅에서 구하는 것은 당대의 풍습을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구약 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 백성과의 결혼을 철저히 금하는 기사들이 나오기도 한다. (예. 수 23장. 에 9장)
사진: 하갈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우물가에서 만난후에 라반의 집에 가서 결혼 패물을 주고 리브가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할때, 리브가의 가족은 그녀를 불러 그녀의 의사를 묻는다. "네가 이 삶과 함께 가려느냐" (창 24:58). 어떤 학자는 라반이 리브가에게 주어진 결혼 패물들을 보고 리브가가 엘리에셀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하기를 은근히 바랬을 것으로 추정한다. 만일 이삭이 직접 온다면 결혼 패물들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였다는 것이다.
성서 이야기의 결혼 네러티브는 종종 우물가에서 그 사건이 일어난다. 리브가의 경우도 그렇지만 야곱 역시 라헬을 우물가에서 만난다 (창 29장), 모세도 십보라를 우물가에서 만난다 (출 2장). 리브가는 우물가에서 엘리에셀로부터 값진 선물들을 받는데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결혼을 전재로 선물들을 받았다가 혹 결혼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여자의 부모는 자신들이 받은 결혼 패물의 두배를 값아야만 했다.
사진: 드릴라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온 리브가는 이삭을 만나기 전에 그녀의 얼굴을 베일로 가린다. 함무라비 법에 의하면 여자의 얼굴을 베일로 가리는 것은 자유인만이 가능하였고 창녀나 여종은 베일로 그 얼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리브가가 이삭을 보고 말에서 내려온 것은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며, 이삭이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의 텐트로 인도한 것은 이제 그녀가 아브라함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글은 David Elgavish의 "Marital Customs as Reflected in the Account of the Marriage of Isaac and Rebekah"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10월이다. 10월은유대절기들의기차가지나가는달이다. 9월 29-30일로쉬하샤나 (유대력으로새해,
구약성서에서는 “나팔절”로 나옴)를시작으로절기기차는 10월 8일욤키푸르( 대속죄일)을향해달려간다. 그리고 5일뒤에는초막절이있고초막절마지막날밤에는
쉬미니 아쯔레트(초막절 마지막 날 성회로 성서 시대에는 이 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비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심카토라 (1년혹은 3년주기로토라를다읽고토라를다시읽는날)라는 종착역을
향해 간다. 절기들만 본다면 이스라엘은종교의나라라는환상이있을수있겠으나, 적어도통계적으로는 50% 이상의유대인들이무신론자들이다. 수치상의통계와는별개로절기는
유대인들에게종교적의식을 뛰어넘어 삶의일부분이
되었다.
사진: 카파롯트 의식
성서에서는 3대절기를반드시하나님의성전이있는곳, 즉예루살렘에서지키도록명하고있는데, 옛적이나지금이나절기들을예루살렘에서지킨다는것은매우특별한의미가있다. 약 2천6백여년전언약의땅에서삶의뿌리가뽑혀머나먼타국바벨론으로유배되었던유대인들은기약없는유량생활을하며언제다시돌아올지모르는예루살렘을향한사모곡을시로지어불렀다. "예루살렘아내가너를잊을진대내오른손이그의재주를잊을지로다" (시 137:5) 그래서일까, 디아스포라된유대인들은매해마다절기를이방나라에서지키면서그토록갈망하며돌아가고싶은땅예루살렘을향한마음의소원을담아 "내년에는예루살렘에서절기를지키게하소서!" 라고기도를드려왔다고한다. 실제로절기들의달인 10월이되면예루살렘의호텔방값이몇배올라가지만,그나마방을구하기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그만큼전세계에흩어져사는많은 유대인들이예루살렘으로모여든다.
흩어진유대인들을한곳으로불러 모아주는절기들이지만, 유대아이들이 10월의 절기들, 특히 욤키푸르를손꼽아기다리는이유는다른데있다. "내년에도차가다니는도로에서자전거를신나게타자."왠뚱딴지같은말인가싶겠지만, 아이들에게욤키푸르는성서의절기라기
보다는자전거타는날로더 잘
알려져있다. 차근차근이야기보따리를풀어가보자. 욤키푸르는성서절기들중에가장중요한절기이다. 레위기 16장은욤키푸르를어떤방식으로지켜야하는지를자세하게설명한다. 대제사장이일년에한차례동물의피를가지고지성소에들어가서 자신과온백성의죄를속죄하고사함받는날이욤키푸르이다. 오직이날외에는지성소에들어갈수가없다. 그러나성막과성전은이땅에없다. 일년에한차례들어갈수있는지성소, 죄사함을받을수있는지성소가파괴된
것이다. 그 뒤유대랍비들은기도와구제, 그리고율법이명하는행위적인선행으로성전에서드리는희생제사를대체하였다.
사진: 욤키푸르날 회개하는 유대인
욤키푸르가있는주간에는여러 종교적 전통의식들이 있다. 늦은밤이나이른새벽에통곡의벽에가면신발을신지않거나, 천으로
된운동화를신고있는유대인들을많이만날수있다. 그리고평소에는통곡의벽주위에의자들이많이있지만이기간동안
만큼은의자에앉을수없다. 회개하면서어떻게편안하게가죽으로된푹신푹신한신을신고의자에앉아서기도를드릴수있냐는것이다.
욤키푸르당일날은금식을선포하고, 전국의모든도로들 (아랍지역도로제외)은공공차량을제외하고는차량통행이전면금지된다. 동네로들어가는입구마다바리케이트를친다. 인터넷은사용가능하지만, 일부외국체널들을제외하고는텔레비젼방송도송출되지않는다. 온세상의차들이다멈춘듯조용하다. 바로 이
순간을 아이들은 기다려온 것이다. 욤키푸르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리면, 길거리에 나와 있는 아이들은 일제히 준비한 자전거를
타고 도로한복판을 달린다.
그날 만큼은 도로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온 가족이 함께 한가롭게 도로를 거닐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니, 욤키푸르가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자전거
타는 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진: 자전거 타는 날(?)
그 사이 통곡의 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통곡의 벽에는 적어도 그날 만큼은 통곡하는 유대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옷을 찢으며 회개하는 유대인들,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회개하는 유대인들도 있다. 한편 카파롯트를 행하는 장소에서는 동물보호 단체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 무슨 닭이 당신들의 죄를 대신 속죄한단 말이냐? 엄한 닭을 죽이지 마라!
같은 하늘아래에서 하루를 보내지만, 욤키푸르의 일상은 다양한 생각, 표현 그리고 행동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듯 하면서도 그 하루를
만들어 간다. 해가 지중해로 넘어가고 나면 도로 곳곳의 바리케이트는 철거되고, 다시 도로는 차량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아이들은 내년에 자전거 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아쉬움속에 자전거에서 내려온다. 통곡의 벽에서 통곡하며 회개하던 유대인들은 통곡을 멈추고 신을 신고 초막절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동물보호 단체에서는 내년에 있을 시위를 위해 사용했던 피켓들을 들고 돌아간다.
그렇게 자전거 타는 날, 금식과 통곡의 날, 카파롯트의 날이 지나간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