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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ish tradition & Yeshua

자전거와 욤키푸르...

10월이다. 10월은 유대 절기들의 기차가 지나가는 달이다. 9 29-30 로쉬 하샤나 (유대력으로 새해, 구약성서에서는 “나팔절”로 나옴) 시작으로 절기 기차는 10 8 욤키푸르( 대속죄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5 뒤에는 초막절이 있고 초막절 마지막 밤에는 쉬미니 아쯔레트(초막절 마지막 날 성회로 성서 시대에는 이 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비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심카 토라 (1 혹은 3 주기로 토라를 읽고 토라를 다시 읽는 )라는 종착역을 향해 간다. 절기들만 본다면 이스라엘 종교의 나라라는 환상이 있을수 있겠으나, 적어도 통계적으로는 50% 이상의 유대인들이 무신론자들이다. 수치상의 통계와는 별개로 절기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의식을 뛰어넘어 삶 일부분이 되었다.

사진: 카파롯트 의식 

성서에서는 3 절기를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 예루살렘에서 지키도록 명하고 있는데, 옛적이나 지금이나 절기들을 예루살렘에서 지킨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26백여년전 언약의 땅에서 삶의 뿌리가 뽑혀 머나먼 타국 바벨론으로 유배되었던 유대인들은 기약없는 유량 생활을 하며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예루살렘을 향한 사모곡을 시로 지어 불렀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 137:5) 그래서일까, 디아스포라된 유대인들은 매해마다 절기를 이방 나라에서 지키면서 그토록 갈망하며 돌아가고 싶은 예루살렘을 향한 마음의 소원을 담아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키게 하소서!" 라고 기도를 드려왔다고 한다. 실제로 절기들의 달인 10월이 되면 예루살렘의 호텔 방값이 몇배 올라가지만, 그나마 방을 구하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세계에 흩어져 사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흩어진 유대인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아주는 절기들이지만, 유대 아이들이 10월의 절기들, 특히 욤키푸르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내년에도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신나게 타자."  뚱딴지 같은 말인가 싶겠지만, 아이들에게 욤키푸르는 성서의 절기라기 보다는 자전거 타는 날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차근 차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가 보자. 키푸르는 성서 절기들 중에 가장 중요한 절기이다. 레위기 16장은 욤키푸르를 어떤 방식으로 지켜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차례 동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사함받는 날이 욤키푸르이다. 오직 이날 외에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성막과 성전은 땅에 없다. 일년에 한차례 들어갈 있는 지성소, 사함을 받을 있는 지성소가 파괴된 것이다. 그 뒤 유대 랍비들은 기도와 구제, 그리고 율법이 명하는 행위적인 선행으로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제사를 대체하였다.

 사진: 욤키푸르날 회개하는 유대인 

욤키푸르가 있는 주간에는 여러 종교적 전통의식들이 있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통곡의 벽에 가면 신발을 신지 않거나, 천으로 된 운동화를 신고 있는 유대인들을 많이 만날 있다. 그리고 평소에는 통곡의 주위에 의자들이 많이 있지만 기간 동안 만큼은 의자에 앉을 없다. 회개하면서 어떻게 편안하게 가죽으로된 푹신 푹신한 신을 신고 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드릴수 있냐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 주변에서는 "카파롯트(속죄의식)" 행사가 진행된다. 카파롯트" 성전에서 드렸던 희생제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성전이 없는데 희생 제사를 아무곳에서나 드릴수는 없다. 그러하기에 희생제사가 아니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성서 시대 당시 희생 제물이 되었던 양이나 염소가 아닌 닭을 잡아 속죄 의식을 행한다. 욤키푸르 전날 사람들은 닭을 사서 카파롯트 의식을 직접 행한다. 닭을 죽이기 전에 회개 기도문을 읽고 닭을 머리 위로 몇바퀴 돌린 후에 닭을 죽인다. 닭이 카파롯트를 행하는 사람 대신에 죽는 것이다. 죽은 닭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한다. 어떤 이들은 살아있는 물고기 머리를 자르기도 하고 돈으로 구제를 하여 카파롯트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욤키푸르 당일날은 금식을 선포하고, 전국의 모든 도로들 (아랍 지역 도로 제외) 공공 차량을 제외하고는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된다.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바리케이트를 친다. 인터넷은 사용 가능하지만, 일부 외국 체널들을 제외하고는 텔레비젼 방송도 송출되지 않는다. 세상의 차들이 멈춘듯 조용하다. 바로 이 순간을 아이들은 기다려온 것이다. 욤키푸르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리면, 길거리에 나와 있는 아이들은 일제히 준비한 자전거를 타고 도로  한복판을 달린다. 그날 만큼은 도로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온 가족이 함께 한가롭게 도로를 거닐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니, 욤키푸르가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자전거 타는 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진: 자전거 타는 날(?) 

그 사이 통곡의 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통곡의 벽에는 적어도 그날 만큼은 통곡하는 유대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옷을 찢으며 회개하는 유대인들,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회개하는 유대인들도 있다. 한편 카파롯트를 행하는 장소에서는 동물보호 단체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 무슨 닭이 당신들의 죄를 대신 속죄한단 말이냐? 엄한 닭을 죽이지 마라!

같은 하늘아래에서 하루를 보내지만, 욤키푸르의 일상은 다양한 생각, 표현 그리고 행동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듯 하면서도 그 하루를 만들어 간다. 해가 지중해로 넘어가고 나면 도로 곳곳의 바리케이트는 철거되고, 다시 도로는 차량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아이들은 내년에 자전거 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아쉬움속에 자전거에서 내려온다. 통곡의 벽에서 통곡하며 회개하던 유대인들은 통곡을 멈추고 신을 신고 초막절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동물보호 단체에서는 내년에 있을 시위를 위해 사용했던 피켓들을 들고 돌아간다. 그렇게 자전거 타는 날, 금식과 통곡의 날, 카파롯트의 날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