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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구약 성경 연대기 더보기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성경의 완성은 책상머리가 아닌 시장 골목이라는 유대인들의 말대로 흰 종이에 검은 잉크의 집합체인 말을 생활 현장에서 실천할 때 성경이 진정한 의미가 있음이 평범한 상식이 되어야 한다. 최근 현직 여 검사가 어느 뉴스 인터뷰에서 폭로한 Me Too 말미에 성추행 당사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남겼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 그 말이 여전히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교회 예배당에서의 회개가 검은 지하에서 돈세탁을 하듯 회개자의 마음만 씻어주지 않나 라는 생각이 가슴 한 복판에서 떠나지 않는다. 회개를 뜻하는 성경 언어인 히브리어는 “슈브”로 ‘돌아가다, 돌이키다’ 의 뜻이 있다. 성경 레위기 6장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 배상을 명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지울.. 더보기
예수 시대의 성전세 (반 세겔)은?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출 30:13-14). 이스라엘 민족 절기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국 각처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 그리고 장사로 한몫 잡기 위한 장사꾼들의 발걸음 소리가 예루살렘 영문밖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예수와 제자들 역시 여리고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촉하여 계곡길과 산지길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해수면보다 약 250미터나 낮은 곳에 위치한 여리고에서 800미터 가까운 산지에 있는 예루살렘까지 가는 약 30 킬리미터의 길은 하루만에 가.. 더보기
아브라함 -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창 13장)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 12:10)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창 12:16)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창 13:1-2)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아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던 날을 성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 12:5) 사진: 텔 브엘세바 (이스라엘 네게브 지역) .. 더보기
말라기 - 요지경이 되어 버린 교회를 향한 외침 말라기(나의 종, 나의 사자-messenger)는 자신에 대한 소개 대신에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1:1) 라는 말로 자신이 전하는 메세지가 누구(하나님)의 것이며, 그 메세지를 수신하는 이들이 누구(이스라엘)인지만을 밝힌다. 말라기가 사역하던 시대 상황은 참으로 암울하였다. 성전 재건 공사를 마치고 나서 약 60-100년 정도가 지났고 성전 재건에 직접적으로 나섰던 이들이 여전히 생존하였다. 그들은 선지자 학개가 전한 하나님의 약속,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학 2:19),” 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활 현장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하였다. 심지어 가난한 이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자녀들을 종으로 팔아야 했고,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 더보기
건물이 아닌 성전된 몸의 회복 - 선지자 학개 주전 586년 아브월 9일: 유대 전통에 따르면 이 날 솔로몬의 성전이 바벨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무너지고 수많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먼 이방인의 땅에서 유다인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 137편).” 포로가 된 유다인들은 눈물로 예루살렘을 그리워 하였다. 주전 537년 일곱째 달(티쉬레이월): 539년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그 이듬해인 538년 유다인들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린다 (스 1:1-4). 이 칙령에 의해 약 5만명 정도의 유다인들이 고향으.. 더보기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7km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 아나돗 출신으로 다윗 당시 대제사장직을 지냈던 아비아달의 후손이다. (왕상 2:26). 선지 소명을 받던 그 날 그는 고백한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1:6)” 나는 아이라 (나아르 아노키. 히브리어) 라는 말은 어린 아이 혹은 청년을 의미하는데 예레미야는 십대 후반 혹은 20세때에 선지 소명을 받았다 (요시야 왕 제 13년, 주전 627년). 하나님은 청년 예레미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소명을 그에게 주신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1:10). 특별히 예.. 더보기
나훔 -하나님의 심판을 잊지 마세요. 니느웨 성읍 동편 박넝쿨 아래 앉아 있던 요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던 것은 앗수르의 멸망이었다. 그러나 기대하던 드라마틱한 멸망은 없었다. 그렇게 약 백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수많은 백성들을 학살하였다. 심지어 앗수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의 지방 도시로 강제 이주시키고 사마리아 지역에 이방 백성들을 정착시킴으로 이스라엘의 순수 혈통과 신앙의 정체성을 말살하였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주전 722년) 앗수르는 남 유다 왕국을 수차례 침공하였다 (왕하 18-19장). 앗수르인들의 잔인함은 니느웨에서 발견된 비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앗수르인들은 전쟁 포로를 산채로 그 가죽을 벗겨 죽이거나, 항문으로 창을 집어 넣어 목까지 찔러 처형하였다. 선지자 나훔이 선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