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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앞 멸망 산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왕하 23:13)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왕상 11:4-7) 솔로몬은 생전에 예루살렘 앞 산에 이방 신들을 위한 산당을 세웠다. 그때가 대략 기원전 940년쯤이었는데, 훗날 요시야가 왕좌에 앉았던 620년대에까지 약 300여년.. 더보기
소돔은 어디에 있는가? 소돔! 이스라엘 성지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소돔이라 불리는 땅은 사해 남단에 위치해 있다. 흔히 롯의 아내가 소금 기등으로 알려진 이 흙과 돌이 뒤섞인 기둥은 사실 산지 위쪽에 있던 동굴이 무너지면서 만들어진 기둥일 뿐이지 수천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는 롯의 처는 아니다 (참조 How Lot's Wife Became a Pillar of Salt," Biblical Archaelogy Review May/June 2009) 사진: 롯의 처의 기동(???) 이 세상에 많은 경전들이 있지만, 성서만의 독특함은 성서속의 인물들의 삶의 히스토리가 특정한 땅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소돔 사건 역시 성서 저자는 그 소돔의 지리적 특징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창세기 13장을 보자. 13장.. 더보기
나오미 가족의 모압땅 이동 경로 성서의 땅을 통해 성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3D 영화를 보는듯 그 재미가 특별하다. 예를 들어, 엘리멜렉과 나오미, 말론과 기론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들어가 기거하였다 라고 룻기서 저자는 설명하는데, 과연 어떤 길을 통해 모압땅으로 갔고 돌아왔을까? 성서는 엘리멜렉 가족의 구체적인 이동 경로를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길을 따라 모압으로,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흔히 이스라엘은 광야 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릴만큼 "걸어서 광야의 세계속으로"의 길들이 많이 있다.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가는 광야의 길도 있을까? 물론 성서 시대의 모압이 현재는 요르단 땅이기 때문에 직접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까지 걷는 체험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모압.. 더보기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눅 10:30) 성서 시대 당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반대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위험한 길이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히브리어로 "마알레 아둠밈" (아둠밈 비탈길 - 수 15:7) 이라고 한다. 마알레 라는 뜻은 "올라간다" 라는 의미가 있고 아둠밈은 "붉다" 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마알레 아둠밈은 붉은 비탈길로 해석할 수 있다. 성서 이야기속에 마알레 아둠밈은 중요한 몇가지 사건에 등장한다. 기브온 족속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속이고 스스로 종이 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둔하고 있던 길갈에서 불과 사흘 길 떨어진 예루살렘 북서쪽에 살고 있었다 (수 9:16). 성서에 직접 언급되지는.. 더보기
열명의 나병환자를 찾아가신 예수님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눅 17장 11-) 몇년전만 해도 사마리아 지역 특별히 제닌(Jenin)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곳곳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가 있었고, 까다로운 검문 절차를 받고 나서야 들어갈 수가 있었다. 현대판 성서 시대를 다시 보는 듯 하였다. 왜냐하면 성서 시대에는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해서 예루살렘이나 갈릴리 지역으로 가는 것이 매우 위험하였고 통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과의 역사적이며 종교적인 갈등은 점점 증폭되었고 갈릴리의 순례자들은 어쩔 수 없이 요단 동편길로 돌아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곤 하였다. 최근 이스라엘 검문소사 철폐된 .. 더보기
사마리아 지역 세겜! 아브라함 (아브람)이 그 아내 사라(사래)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던 땅 (창 12:5-7). 훗날 예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만나, 그녀와 수가성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땅 (요 4:1-42). 그 세겜에 다녀왔다. 오랫동안 기억 주머니속에 너무 깊이 파묻혀 있던 땅 세겜. 지난 2005년경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해 팔레스타인 택시를 타고 성서의 땅들을 밟았었다. 그땐, 카메라가 없었는지라 눈으로 스켄만을 하고 기억 주머니속에 담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있는데 무슬림이었던 팔레스타인 기사가 기도 시간이 되었다며 택시에서 내려 한 동안 기도를 하였고, 그 틈에 함께 동행하였.. 더보기
예수께서 머무셨던 빈들 가까운 에브라임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요 11:54) 예루살렘의 종교인들 입장에서는 예수라는 인물은 트러블 메이커 (Troublemaker)였다. 짭짤한 벌이가 되었던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서의 상거래 현장을 뒤집어 엎어놓는가 (요 2:13-22) 하면, 이미 죽어서 나흘이 된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린 사건은 당시 유대 종교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위협적인 일이었다. 베다니 마을은 예루살렘 동쪽산인 올리브 산 뒷편이니,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올리브 산을 넘어 예루살렘 성전산 (The Mount of Temple)과 그 주변 마을, 그리고 종교인들의 귀에 전달되었을 것이다... 더보기
베데스다 못은 어떤 기능을 지닌 저수지였을까? 물의 동함을 기다렸으나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나 소망없이 하루 하루를 살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았던 사건의 현장 베데스다(아람어로 베이트 하스다, 히브리어로는 베이트 헤세드).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비, 은혜의 집"이라는 아름다운 뜻이 있는 곳이지만 그 곳은 처절한 경쟁, 남을 밟고 넘어가지 않고는 치유를 받을 수 없기에 반드시 누군가를 끌어내려야 하는 곳, 자비와 은혜가 무색한 현장이었다. 38년된 병자의 깊은 절망속에 나오는 하소연은 처절한 경쟁으로 점철된 자비의 집의 현실을 증거한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7). 38년 된 병자가 물이 움직이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더보기
왜 거라사인가? Kai« e˙lqo/ntoß aujtouv ei˙ß to\ pe÷ran ei˙ß th\n cw¿ran tw◊n Gadarhnw◊n Kai« h™lqon ei˙ß to\ pe÷ran thvß qala¿sshß ei˙ß th\n cw¿ran tw◊n Gerashnw◊n Kai« kate÷pleusan ei˙ß th\n cw¿ran tw◊n Gerashnw◊n, h¢tiß e˙sti«n aÓntipe÷ra thvß Galilai÷aß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마 8.28) 예수께서 바다 건녀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막 5. 1)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눅 8. 26) 예수께서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한 사건은 위 세 성경에 다 나온다. 특이한 점은 성서 기자들의.. 더보기
왜 가버나움인가? כי לא מועף לאשר מוצק לה כעת הראשון הקל ארצה זבלון וארצה נפתלי והאחרון הכביד דרך הים עבר הירדן גליל הגוים העם ההלכים בחשך ראו אור גדול ישבי בארץ צלמות אור נגה עליהם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아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사 9: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샤야.. 더보기
통곡의 벽 높이 18미터, 길이 488미터의 벽, 골곡 깊은 유대 역사의 산 증인, 유대인에게 가장 거룩한 성지...코텔 하마아라비 (서쪽벽, 일명 통곡의 벽)... 주전 37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른 에돔 족속의 후손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성전 확장 공사를 시작한다.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보잘것 없이 초라하였던 스룹바벨의 성전 (제 2차 성전)을 보며 과거의 영화로운 위대한 성전의 기억을 담고 있던 노인들은 그 기억을 눈물로 씻어내지 않았던가. 수백년 동안 외세의 침입과 우상 숭배로 깊은 상처를 입었던 그 성전에 헤롯은 매쓰를 가한 것이다. 석공들과 당대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기술진 그리고 헤롯의 탁월한 건축술을 총동원하여 성전을 확장한다. 그러나, 성전 확장 공사는 그의 종교적 열심에서 출발하지 않.. 더보기
성전산의 성전 건축 성전산 (Temple of Mount)에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매우 난해한 공사였다. 왜냐하면, 성전을 지을 터가 평지가 아닌 산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 건축가는 산지를 깍는 평탄 작업을 해야 했는데, 이 작업은 오랜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대공사였다. 아마 성전을 건축하기 이전 성전산의 모습은 아래의 사진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런 산지위에 성전을 건축한 것이다. 헤롯 당시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 증축 공사를 대대적으로 실행하였다. 이전 성전으 2배 정도로 성전을 확장하는데, 당시 헤롯은 성전 주변의 플라자를 크게 확장하였다. 확장 방법은 성전산 주변에 축대를 쌓고 나서 돌과 흙으로 축대 안쪽을 매꾸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흔히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서쪽벽 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