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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ish tradition & Yeshua

Twila Paris 의 노래 가사를 읽어보세요..흐흑..

우리는 섬김이라는 포도를 눌러짜서는
인생의 가장 달콤한 포도주를 마신다.
그것은 바로 선물을 주는 일이다.

선물을 줄 때 우리는 가장 멋있다.
사실 선물을 줄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빼닮았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많이 주시는지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
하나님의 선하고 후하신 마음은 밝게 빛난다.
하나님의 모든 선물은 그 분의 사랑을 잘 드러내 준다.

그러나 십자가의 선물들만큼
그 분의 사랑을 나타내주는 선물은 없다.
포장지가 아니라 예수님의 수난에 싸여 찾아왔다.
나무 밑이 아니라 십자가 밑에 놓여졌다.
리본에 달린 것이 아니라 피가 뿌려져 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분은 단지 피를 흘리기만 하면 되셨다.
하지만 그 분은 더 많은 것을 하셨다. 훨씬 많은 것을 하셨다.
십자가의 장면을 들여다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포도주를 적신 해융.
죄패.
그리스도 양 옆의 십자가...

"오, 주님."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주님, 이런 물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궁금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저를 위해 하신 일입니까?"

처음인 것처럼, 아니 어쩌면 정말 처음으로
그 은혜의 선물들을 풀어보자.
선물에 손을 대고 잠시 멈춰 귀기울여 보라.
십자가의 나뭇결을 느껴보고 면류관의 똬리를 더듬어보고
못의 머리부분을 매만져보라.
그분의 속삭임이 들려올 것이다.

"바로 너를 위해 한 일이다.(I did it just for YOU)"






성경을 선한 책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성경을 기록한 펜대를 타고 잉크가 흐르듯 그 속의 이야기마다 선혈이 낭자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던 날만큼 야수의 악이 사납게 날뛰던 순간은 없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잠자느라 바빴고 나중에는 도망가느라 바빴다.
헤롯은 볼거리를 원했다.
빌라도는 사건에서 손을 떼고 싶었다.
그리고 군병들은? 피를 원했다.

채찍질은 군병들이 행한 첫번째 일이었다.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세번째 일이었다.
이 두 행동에 대해서는 우리들도 군병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들이야 명령대로 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에게는 딴 생각이 있었다.
그들은 우선 재미를 보고 싶었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탈진하여 초죽음이 된 한 목수를
둘러싼 채 구타하고 있다.
거의 죽은 자에게 침을 뱉어 쾌감을 맛보는 인간은
도데체 누구란 말인가?

침뱉음이란 몸에 고통을 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침 뱉음은 영혼에 수치를 주기 위한 행동이다.

당신도 그런 적이 있는가?
남을 험담한 적이 있는가? 비방한 일은?
분노로 손을 치켜올리거나 교만하게 눈을 흘긴 적은 없는가?
누군가의 백미러에 쌍 전조등을 쏘아댄 일은 없는가?
내 기분 좋아지려고 남의 기분을 비참하게 만든 적은 없는가?

그것이 바로 군병들이 예수님께 한 일이다.
당신과 내가 그 군병들과 똑같은 일을 할 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곧 우리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이다.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누구나 우리 안에는 야수같은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놀란 적이 있는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의문이 생긴 적이 있는가?

성경은 그 질문에 딱 한 단어로 대답한다.
죄.

군병들의 침이 우리 마음의 더러움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의 더러움을 어떻게 하시는지 잘 보라.
그 분은 그것을 십자가로 가지고 가신다.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사 50:6)"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예수님의 뺨을 닦아주지는 않았다.
그분의 기도 한마디면 천사들이 움직일 수도 있었다.
침을 닦아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 그렇게 명하지 않으셨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못을 택하신 그분은 침도 택하셨다.

죄인들에게 성인의 얼굴을 주시려고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의 얼굴을 취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 중
가장 멋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아는가?
다시 말해, 성육신의 가장 놀라운 부분이 무엇인지 아는가?

영원을 이 세상의 달력과 바꾸신 것?
아니다. 그 맞바꿈도 분명 주목의 대상이긴 하다.
...

당신은 그 분이 육체로 사셨다는 점을 꼽을 지도 모른다.
무한하시던 분이 유한해지셨다. 피곤한 근육과 무거운 눈꺼풀의 제약을 받으셨다.
한때 팔을 펼치면 끝이 없던 그 분이 30년 넘도록 그저 팔 길이 하나만큼밖에 닿을 수 없게 되었다.

놀랍다. 하지만 이것이 그분이 오신 사건 중에 가장 놀라운  부분일까?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지 않고 죄를 받아들이신 것이다.
왜 이것이 더 놀라운가?
그것이 바로, 가시 면류관의 메세지 아니던가?

성경도처에서 가시는 죄가 아니라 죄의 결과를 상징한다.
반역은 가시를 낳는다.
죄의 열매는 가시이다. 뾰죡하여 따끔따끔 아프게 찔러대는 가시.
죄의 열매가 가시라면, 그리스도의 이마에 얹힌 가시면류관은
그 분의 마음을 찌른 우리의 죄의 열매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죄한 그 분이 우리 대신 죄가 되셨을 때 죄의 모든 감정이 그 분을 덮쳐왔고
그 분은 불안과 죄책감과 고독을 느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26)"
이것은 성인(聖人)의 말이 아니다. 죄인의 부르짖음이다.
이 기도는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사건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 중 하나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다른 모든 것들도 멋있다. 말할 수 없이 멋있다.
그러나 천국의 면류관을 버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분의
가장 멋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은가?

바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바로 당신을 위해.
He did it for you. Just for you....






"너를 용서한다"
못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숙련된 건축가요 좋은 친구인 그가 우리에게 멋진 집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이 집에는 몇 가지 실수가 있다.

이번 주까지만 해도 내 눈에는 그런 실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집에 살지 않았으니까.
일단 입주하여 살게 되면 모든 흠이 눈에 띈다.

"잘못된 부분을 다 적어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정 그렇다면' 하면서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방문이 하나 잠기지 않는다.
다용도실 창문이 삐걱거린다.
아이들 방 화장실에 수건걸이가 없다.
서재 문에는 아예 손잡이가 없다.
이미 말했듯이, 멋진 집이다. 하지만 목록은 자꾸 길어진다.

건축가의 실수를 쭉 적다 보니
하나님이 지금 내가 하듯이 내 실수를 적으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분도 내 마음에 들어와 살지 않으시던가?
내 집의 흠이 내 눈에 보일진대 하나님은 내 안에서 어떤 것들을 보실까?

        기도실 문은 하도 사용하지 않아 경첩이 녹슬었다.
        질투라는 이름의 난로는 펄펄 끓고 있다.
        다락방은 겹겹이 쌓인 후회로 금방 내려앉을 것 같다.
        지하실에는 또 웬 비밀이 그리 많은지.

여기 당신의 실패의 목록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단점을 적으셨다.
그리고 그 목록은 대중에 알려졌다.
하지만 당신은 본 일이 없다. 나도 보지 못했다.
갈보리 언덕에 가보자. 거기 그 이유가 있다.
                X                               X                                  X
군병들이 망치로 대못을 내려치려는 순간, 예수님은 고개를 돌려 못을 보신다.
주먹을 움켜쥠으로 그 분은 저항하실 수 있었다.
이 손은 바다를 잠잠케 하시던 바로 그 손이 아닌가?
죽은 자를 불러 살리시던 그 손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손은 주먹을 움켜쥐지 않는다.
왜? 예수님은 저항하지 않으셨을까?

그분은 뭔가를 보셨다.
그것이 그분을 가만히 있게 만들었다.

망치를? 그렇다.
못을? 그렇다.
군병의 손을? 그렇다.

그분의 손과 나무 십자가 사이에 목록이 있었다. 긴 목록.  
우리의 실수 목록. 우리의 정욕과 거짓말, 탐욕의 순간들과 방탕의 세월.
우리의 죄 목록.

내가 새 집의 흠을 찾아내듯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찾아내셨다.
그러나 목록 위쪽의 죄들은 그분의 손에 가려졌고
아래쪽의 죄들은 그분의 피에 덮였다.
당신의 죄는 예수님에 의해 '도말', 즉 지워졌다.

그분이 주먹을 움켜쥐지 않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분은 목록을 보셨다 !
                     당신의 실패가 적힌 이 증서, 이 목록이다.
                          그분은 이 죄의 값이 사망임을 아셨다.
                                 이 죄의 출처가 당신임을 아셨다.
               그러나 당신 없는 영원을 생각하실 수 없기에
                그분은 못을 택하셨다(He chose the nails).

망치 자루를 쥐고 있던 손은 로마 보병의 것이 아니었다.
망치를 내리치던 힘은 성난 폭동의 것이 아니었다.
사형선고는 시기하는 유대인들의 결정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친히 못을 택하셨다.
예수님은 친히 망치를 내리치셨다.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그 손으로 당신의 죄를 잔잔하게 하셨다.

-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원제 He chose the nails, 두란노 역간), Max Lucado ]

이곡은 Max Lucado 목사님의 He chose the nails 앨범에 실린 Twila Paris가 부르는 Worthy Is The La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