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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산의 역사 - 요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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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1차 성전시대: 주전 1,000 - 586년

주전 14세기경 예루살렘은 이집트의 아멘노피스 3세와 다른 근동 지역을 통치하던 악헨아텐 당시의 외교문서인 아메르나 문서에 언급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성서에 의하면 주전 1000년경 다윗이 예루살렘을 함락한후 다윗성이라 칭하고 이스라엘의 수도를 삼는다. 훗날 다윗은 도시 상부에 있는 모리아 산 (유대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리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한 곳- 창 22:2)에 한 제단을 세운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성을 모리아 산까지 확장시킨다. 페니키아의 두로 (현대 레바논) 에서 파송된 건축 기술자와 함께 솔로몬은 다윗의 제단이 있던 그 자리에 첫번째 성전을 세운다. 350년 동안 솔로몬의 성전은 이스라엘 종교의 가장 중요한 곳이 되는데 이 곳에서 희생제사와 중요한 절기 순례가 행해진다. 하지만 주전 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성전은 완전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끌려간다.

2. 제 2차 성전시대: 주전 538 - 주후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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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유수는 페르시아 아케멘이드 제국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함락시키고 근동지역을 통치하면서 끝을 맺게 된다. 주전 538년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대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한다. 성전 공사는 주전 516년에 완성된후 헤롯 대왕에 의해 (주전 37-4년) 성전산의 북쪽, 남쪽 그리고 서쪽부분을 확장공사를 한다. 또한 헤롯 대왕은 성전을 보다 더 화려하게 장식을 한다. 성전산으로 올라가는 문들을 몇더 더 만들고 지하 터널을 통해서도 올라갈 수 있도록 한다. 성전산의 남쪽부분에는 아름다운 콜로네이드 포리트코를 만든다. 북서쪽 구석에는 안토니오 요새를 만든다. 유대 제 1차 봉기 (66-73[4])중인 70년경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제 2차 성전 역시 로마 장군 타이투스에 의해 완전히 무너진다.

3. 로마와 비잔틴 시대: 70 -6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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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봉기이후 예루살렘은 완전히 폐허 상태가 되고 로마군의 주둔지로 변한다. 130년경 로마 황제 하드리안은 예루살렘을 엘레나 카피톨리아로 그 도시 명칭을 개정하고 유대인들의 출입을 완전히 금한다. 이로 인해 제 2차 봉기 (132-135)가 일어나서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전을 다시 재건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하드리안과 그의 후계자인 안토니우스 파이우스 (138-161)은 성전산의 자신들의 동상을 만들어 세우기까지 한다. 4세기에 접어들면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 (306-337)에 의해 로마는 기독교화된다. 그는 기독교의 성지중 가장 거룩한 장소인 성묘 교회를 건설한다. 하지만 수세기동안 비잔틴 기독교인들은 폐허가 된 성전산을 방치하는데 이는 예수의 성전 파괴 예언이 성취된 곳이기 때문에 그 어떤것도 재건 불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 초기 아랍 시대: 638-10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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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년 무슬림 칼리프 우마르 이빈-엘-카하투브가 예루살렘을 정복한다. 우마르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할때 비잔틴 시대때 폐허가 되었던 성전산으로 먼저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내려온다. 성전산에 건축된 "하람 알 샤리프" 는 우마아드 칼리프하테 (661-750)에 의해 건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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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산 남쪽에 몇개의 화려한 왕궁들을 건축한다. 이 건축들을 위해 그는 로마시대때 파괴되었던 성전산의 돌들을 재사용한다. 우마아드의 건축의 꽃은 바로 "바위 돔" (the Dome of the Rock)으로 칼리프 아브 알 말리크에 의해 691년 건축된다. 8세기 초경 우마아드는 알-악사 사원을 성전산 남쪽에 건축한다. 그 후 아바스디스 (750-969, 파티미디스 (969-1071) 그리고 셀주크 (1071-1098)때도 예루살렘은 약간의 변화가 일어난다. 성전산은 1099년 십자군에 의해 정복당한다.

5. 십자군 시대: 1099 -11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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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기독교인들은 성전산을 폐허 상태로 방치했지만 십자군은 동일한 이유로 성전산을 거룩한 장소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성전이 신약성서에 언급되기 때문이다. 성전산은 어린 예수가 방문을 한 장소이고 그 자신의 메시야 됨을 인식한 곳이 아니었던가 (눅 2:22-38)? 십자군은 무슬림의 건축물을 기독교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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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돔은 "템플움 도미니"가 되고 알-악사 사원은 템플움 살로모니스가 된다. 바위돔 옆 동쪽에 있는 the Dome of the Chain (쇠사슬 돔)은 성전산에서 떨어져 순교를 한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무덤이 돤다. 바위돔안에 십자군은 에스-사크라 (바위돔 중심에 있는 바위)주변을 대리석으로 장식함으로 제단 기능을 하도록 만든다. 또한 템플움 도미니의 천장에는 철 십자가를 장식한다.

6. 아유비드, 마믈릭, 오스만 터어키 시대: 1187-19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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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7년 아바시드의 지도자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그는 바위돔에 장식된 철 십자가를 제거하여 녹여버린다. 살라딘의 후계자인 아뷰비드 왕조는 예루살레을 1250년까지 다스리고 이집트의 마믈릭에 의해 정복당한다. 아유비드 왕조는 십자군 건축물들을 파괴하여 그 재료들을 자신들의 건축물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십자군과 아유비드처럼 마믈릭 왕조는 오스만 터어키가 예루살렘을 1517년 정복할때까지 성전산에 몇가지 중요한 건축을 한다. 부한 아드-딘 제단, 콰이트바이 샘 - 베들레헴 남쪽에 있는 솔로몬 못 (실제는 헤롯 당시의 못)으로부터 성전산까지 연결되는 수로-을 만든다. 마믈릭 역시 성전산 옆쪽에 첨탑을 만든다. 예루살렘은 오스만 터어키 시대 (1517-1917)에 가서는 성전산 밖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오스만 터어키 제국 역시 성전산의 낡은 건축들을 보수한다. 바위돔의 푸른색 타일들은 오스만 터어키의 슐탄 술레이만 황제에 의해 1540년중엽 장식된 것이다. (이 타일들은 1960년대에 교체된다)

Translated from Era by Era: The Temple Mount in the article "When Crusader kings ruled Jerusalem" by Jack Meinhard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