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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정경의 탄생 - 히브리 성서는 고난과 상실을 실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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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야다 쉬모나 키부츠, 성서 정원에 있는 "타작 마당과 농기구"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사이즈를 볼 수 있습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신 16:13)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2)

"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단편 조각들은 나의 파멸을 빼앗아 간다" 슬픔에 찬 이 싯구와 함께 T. S. Eliot는 위대한 "황무지" 라는 시의 결론을 맺는다. 기묘하고, 비극적이며, 감동적인 시로 세계 대전들 중에 현대 시의 극절정을 보여준 "황무지"는 1922년에 출간되었다. 유럽의 낙관주의는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그 방어 진지가 참혹하게 파괴되었고, 인간의 유한성, 도덕적 단절 그리고 죽음이라는 슬픈 진리를 외치는 새롭고도 분명한 목소리가 드높여지기 시작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의 문학, 예술, 그리고 과학은 여전히 현대주의 분위기속에 있으며, 엘리어트, 카프카, 피카소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상상되어진 문제들과 가능성들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천재들은, 오랜 견고한 법칙들이 무감각하고 거대한 파괴의 대명사인 전쟁의 충격파로 인해 산산히 부서진 후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방법을 창조해 내었다.

전쟁의 재앙후에 옛 질서의 기초를 허무는 새로운 문학과 지적 정경의 등장은 인간 문제들속에 내재한 하나의 순환 방식과 같은 것이다. 질문, 고난, 절망의 시간은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는 가능성과 필요성을 만들어낸다. 안정된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곳에 도달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안정성은 우리로 하여금 행복과 기쁨의 길가운데 머물도록 한다. 현대주의의 입장에서 볼때 새로운 정경은 고난과 상실을 실증하는 것이다.

히브리 성서 정경도 고난, 상실, 그리고 문화적 재앙을 경험한 어린아이와 같은 과정을 보냈다. 한편 다른 요인들 - 문학적 권력을 포함한- 은 성서 정경화에 포함시킬 책을 선정하는데 중요한 조건들이 되었다. 문화적 상실의 상황은 성서적 정경 탄생의 즉각적인 배경이 되기도 한다.

정경 탄생의 고전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은 느헤미야 8장에서 에스라가 토라를 읽는 장면이다. 열왕기와 선지자들의 시대는 이미 오랜 과거속으로 사라지고, 능력있는 제사장이면서 서기관인 에스라는 모세 시대의 퇴색한 기억인 "모세의 율법책"을 손에 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바로 이때, 바벨론 유수에서 귀한한 이들은 예루살렘의 이전 영광을 되찾기 위해 무단한 애를 쓰지만 오래 못가서 체념하고 만다. 귀한자들은 서로 갈라지게 되고 새롭게 회복된 제 2차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바벨론의 정복 과정에 뒤따른 파괴와 바베론 유수는 이스라엘 종교의 기초에 균열을 가져왔다. 바로 이것을 에스라는 한 권의 책을 읽으므로써 회복시키려 한다.

에스라가 그 책을 읽을때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고 만다. 느헤미야 8:9은 "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라고 기록한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던 이들이 비애에 가득찬 눈물을 흘릴때 그들은 "슬퍼하지 말고 울지 말라" (9절)는 명령을 받는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것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 새로운 것이 있다. 과거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책을 읽고 있지만 책의 단어들을 하나 하나 읽어 내려갈때, 또 책의 내용을 들을때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들의 상실, 고난은 또 다른 깊은 감정으로 전이 된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느 8:12).

이런 측면에서 볼때, 과거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설명되는 한권의 책을 통해 재 창조가 된다. 새로운 정경은 재앙과 상실의 배경을 증거하며, 그 파괴의 흔적을 어떻게 제거할지를 제공한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이, 말한대로 정확하게 발생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은 정경 그 자체를 하나의 마술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경은 과거를 새롭게 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서로 의사 소통이 되고, 이해되고, 기쁨과 결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Reference for this article: Hendel, Ronald S. "The Birth of the Canon," Bible Review, Feb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