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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성서 네러티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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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리나라에서 공수해온 독서대입니다. 생각보다 커서 좋네요.

오늘은 기밧드람, 히브리대 도서관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잠깐의 외도(?)이지만 Mt. Scopus 도서관보다 분위기가 좋은데요. 지난 여름 만났던 히브리어 선생님 오하드 코헨이 기밧드 람 도서관이 더 좋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됩니다. 춥지도 않고요. 도서관에 들어와 보니 오하드 코헨이 저 한쪽 구석에서 공부를 하고 있네요. 얼마전에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한 후 수정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 함께 수업을 듣는 '르브가'라는 이스라엘 친구에게 수업 내용 요약한 것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죠.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는 보내주었습니다. 친절하게 다음에 또 보내주겠다는 메시지와 함께요...그래서 오늘 도서관에서는 보내준 자료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사실 히브리어로 수업을 듣고 있다보니 눈치와 코치도 별 도움이 안되네요. 애구...

음..이번 학기에 Reading Biblical Narrative (קראת סיפור מקראי - 성서 네러티브 읽기)라는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לֹאה מזור (레아 마조로)이고요. 아주 열정이 넘치는 분이시죠. 시험 준비도 할겸 해서 요약 정리한 것을 홈피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성서는 매우 흥미진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성서의 첫장인 창세기에서 우리는 그 첫번째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데 "베르쉬트 바라 엘로힘..." (태초에 하나님께서...)를 시작으로 해서 이야기들을 풀어 나간다. 성서 역사 역시 이야기들을 통해 전달되었으며 이야기들은 성서 문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성서는 이야기들로만 가득찬 것이 아니다. 성서에는 법전과 시들도 이야기 중간 중간에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성서 이야기의 중요한 목적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하면 "네 자손에게 말해주라" 가 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몇가지 예를 들면:

신명기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여호수아 4:21-2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밝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또한 성서 이야기의 주 목적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자손 대대로 지킬 것을 말해주기 위함이다.

출애굽기 19: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기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시편 78:1-4 "(아삽의 마스길)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4절에서 "후대" 의 히브리 원문은 "דור אחרון"인데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마지막 세대" 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성서 히브리어에서 "도르 아하론 (דור אחרון)는 "다음 세대"를 뜻한다. (우리 한글 성경은 해석을 아주 적절하게 잘 했네요)

성서의 이야기들은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세대를 걸쳐 이야기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사회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중심 역할을 하였다. 흔히 원역사로 불리는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권자가 되시며, 이스라엘 민족과 땅에 관한 주권을 형성하는 이야기이다. 세상의 많은 국가들은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성서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거룩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1. 이스라엘 민족. 2. 이스라엘 땅, 그리고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이 세가지 요소들은 성서를 구성하는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든 성서 이야기들은 이 기본 요소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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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히브리대안에 있는 국립도서관입니다. 다들 공부하고 있는데 사진찍으려니 미안해서 조용히 찍으려다 보니 별로 잘 안나왔네요.

아리스토들은 말하기를 이야기는 기쁨을 가져다 주는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이야기를 듣고 공부한다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물론 성서는 일종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 쓰여진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성서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 형성의 중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여러 이야기 층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구전은 많은 그 전달 과정에서 많은 변천과 반복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왜 구전은 반복 과정을 거치는가? 이야기의 반복은 이야기 내용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대화를 할때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해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특정 단어를 강조 하기 위해 액센트를 주기도 한다. 구전이 글로 기록되기전에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이다.

하지만 구전이 글로 기록되었을때는 구전이 지닌 특징들을 있는 그대로 글속에 담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100여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이야기가 있다고 하자. 그 이야기의 시작은 겨우 5분이면 끝날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살이 붙고, 수정이 가해지고 혹은 다른 이야기와 합해지면서 나중에는 500분짜로 매우 긴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성서에 이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다. 왜 그런가? 우선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 기록을 위해 주로 사용되던 파피루스 혹은 동물의 가죽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구전 이야기들을 다 기록할 수 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의 간략한 내용만을 담을 수 밖에 없다.

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