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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ish tradition & Yeshua

초대교회와 유대교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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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강한 어조로 비난을 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36).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성전을 정결케 하며 유대 지도자들을 향해 비난을 한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막 1:17). 또한 유대 종교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기도 한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막 13:2). 바울은 유대인들 하나로 연합시키는 역할을 하는 율법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계시록은 유대인들의 회당을 "사탄의 회당" (계 2:9)이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유대인들을 향한 매우 강한 어조의 논쟁들을 복음서, 사도행전, 그리고 로마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유대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심한 책망을 한다.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44).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이렇게 말한다.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행 7:51).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쫒겨났을때 누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행 13:46). 이와 동일한 말을 로마서 2:17-19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요". 유대인들의 율법에 반하는 행동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게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롬 2:23).


이러한 논쟁들은 예수와 그의 도 (The Way)를 따르는 무리들이 유대교로부터 매우 급진적인 분리를 야기시킨것처럼 보일뿐 아니라, 적어도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성서가 완성된 1세기말 무렵 기독교라는 신생 종교가 탄생함으로 유대교로부터 완전 분리된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종교로서 존재하게 되었는가? 사실 일부 기독교인들, 예수를 신의 대리자로 믿는 사람들은 신생 종교(기독교)의 탄생을 주장한다. 이러한 결론을 지지하기 위해 그들은 위의 성서 구절들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쟁이 되는 성서의 내용들이 예수와 유대교사이,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과 유대교 사이의 완전한 분리를 뒷바침하는가? 초대교회는 정말로 유대교와 전혀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는가? 정말로 새로운 종교인가 아니면 내적으로 유대교와 연관성이 있었는가?


위에서 제시한 성서 구절들을 단순히 읽어보면 유대인들과 예수의 추종자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과 둘 사이의 분리를 잘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는 초대교회로의 종교적 개종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여지기까지 한다. 그중에서도 누가가 기록한 바울의 개종 사건은 매우 분명한 한 예가 된다. (행 9:1-29, 22:3-21, 26:9-20).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선교 활동은 그 첫 대상이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되시는 예수를 따르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도록 권고를 받는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누가가 사동행전을 기록한 전형적인 목적 즉 초대교회의 선교 활동을 엿 볼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몰려왔던 유대인들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묻는다. " 우리가 어찌할꼬" 이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7-38). 그리고 나서 누가는 그 날의 성공적인 선교 결과물을 기록한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1). 그렇다면 이 날의 사건이 새로운 종교의 태동과 관련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를 유대교로부터 초대교회가 분리된 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3장에는, 바울이 유대인과 유대 율법에 반하는 논쟁을 편다. 그는 모세의 직분이 "죽게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이라고 말한다 (고후 3:7). 또한 그는 유대인들이 목이 곧고 마음이 둔한 백성들이라고 책망한다. 게다가 율법을 읽고 배우는 것이 이들의 마음을 더 강팍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유대인들과 예수를 따르는 이들 사이의 분리를 주장하게 위해 바울은 "우리"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7-18). 율법은 이제 "옛 언약"이 되었으며, 바울은 "옛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이러한 증거들은 성서를 연구하는 학도들에게 초대교회가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번 묻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예수를 보도록 하자. 그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며 유대인으로 죽었다. 예수는 삶의 마지막이 가까왔을때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판에 박힌 삶을 뒤로 하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라고 권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에 관해서나 혹은 그 언약에 반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반면, 복음서 전통은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반격을 점차적으로 일반화시킨다. 이러한 반격은 예수의 죽음과 그 후에도 계속된다. 예수의 죽음은 복음서 이야기들을 펼치는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예수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였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의 처형 방식으로 로마인들이 예수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양보를 하거나 그들의 말을 듣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복음서 전통과 사도행전은 로마인들에게 향해야할 비난의 화살을 유대인들에게 돌리는 초대교회의 증폭되는 관심사를 묘사한다. 이 비난은 단지 일부 유대 지도자들만이 아닌 점차적으로 유대인 전체를 향한 비난으로 확대된다. 심지어 일부 신약성서에는 십자가 처형에 대한 언급이나 십자가가 전혀 언급이 되지 않기도 한다. (행 2:23, 3:15, 5:30, 10:39). 이러한 예들을 통해, 독자들은 로마인들에 의해 주도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간과하게 된다.


훗날 이것은 하나의 꾸며진 거짓말로 발전한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은 로마인에 의해 예수가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게 되면 교회가 위험에 빠질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날조를 통해 초대교회 신자들은, 로마 제국의 주권자들에 의해 처형을 당한 죄수 (예수)를 따르는 무리로 보여지게될 가능성을 피해야만 했다. 점차적으로 교회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전가시키며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을 죽인 자로서, 그리고 신적 계시와 언약에 반하는 행동을 한 이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속에 있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위치가 이방 교회로 대체되게 된다.


하지만 예수는 그 어떤 새로운 종교도 창시하지 않았다. 우리가 초대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다른 경험들의 결과물이다. 비록 정해진 날들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을 "초대교회"의 탄생이라는 용어보다는 "부활절 이후의 경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부활절 이후의 경험들은 십자가 처형에 대한 유대 성서 전통의 설명을 요구하게 될 뿐 이날 유대 성서 개념속에서 이 부활절 이후의 경험들에 대한 해석을 하게 된다. 따라서, 십자가 처형 이후의 부활절과 오순절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성서 (히브리어 성서)와 유대교내의 종교적 경험의 테두리내에 머물고 있었다.


예수보다 150-200년 전에 살던 의로운 선생 (the teacher of righteousness)에 관한 사해사본의 언급을 비교해 보자. 예수의 죽음 이후에도 쿰란 공동체는 수십년을 더 지속하였다. 쿰란 공동체는 성전을 통제하는 제사장들에게 반기를 들었고 유대교와는 다른 제의적 달력을 사용했지만 여전히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지키고 있었다.


사실 예수는 신성모독을 행햐였다고 고소를 당하였다 (마 26:65). 하지만 신성모독은 이스라엘-유대의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히브리 성서는 서로를 향해 신성모독을 행한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와 하나냐 - 렘 28장, 아모스와 나움, 하박국, 신명기와 잠언 10-29장, 욥 28장 등등.


심지어 인간의 신격화는 유대 전통의 일부이기도 하다. 유대 외경들중 에녹서 (주전 3-1세기경)는 인간의 신격화를 기술한다. 첫째, 에녹은 천사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가브리엘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1 에녹 24:1, 1 에녹 70 - 천상의 지도자). 또 인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1 에녹 71). 다니엘서에도 메시야적인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7:13-14).


예수처럼, 바울도 유대 전통내에 머물렀다. 바울은 늘 자신을 유대인으로 소개하였다. 특별히 로마서 9-11장은 이를 잘 드러낸다. 롬 9:2-5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욕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바울은 로마서 10장과 11장에서도 비숫한 말을 한다. 더 나아가 바울이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였을때 그의 유대인들의 향한 동정과 열심을 증거한다.

그렇다면 신약성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을 향한 비난의 논쟁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이러한 논쟁들은 분명히 성서적 유대 전통속에서 행해진 것들이다. 유대 전통은 충돌과 대립으로 가득차 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에게 대한 논쟁은 다음의 비교를 통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예를들어, 이스라엘과 유대 사이의 충돌을 보자. 솔로몬 시대를 끝으로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된다. 남 유다 선지자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 왕국을 매우 강한 어조로 비난을 하는데 이는 신약성서의 반 유대인적인 것보다 훨씬 강한 것이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며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암 5:21-23).


예레미야은 이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로 비난을 한다. 그는 성전을 "도둑의 소굴"이라고 비난한다 (렘 7:110, - 마 21:13에서 성전을 정화하실때 인용함).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렘 19: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쫒아 내보내라 그들이 만일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 (렘 15:1-4).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남아 있었다.

신약성서 시대에 가까운 1세기경의 유대 사가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이집트로부터 약 3천명의 유대인들이 사막을 걸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이들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경로를 따라 온 것이다. 이 사람들과 그들의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바라보이는 감람산에 도착하였다. 이집트에서 온 유대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벽이 허물어질것을 예언하였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도시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 하였다. 이 예언은 타락한 예루살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도시가 아니라는 적의에 찬것이었다. 선지자의 약속은 문자적으로 성서에 나오는 심판 메시지를 문자적으로 따른 것이다. 이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행렬을 지어 갈때 그 어떤 무력 행사도 없었다. 선지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분명히 하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신뢰하였다. 그들이 기적을 기다리고 있을때, 로마군들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이집트로부터 온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는 것을 도왔다. 유대인들이 다른 유대인들을 향한 이런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유대교의 분열을 말하지 않는다.


짧게 말해서, 1세기경의 유대교는 매우 다양한 색체와 현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초대교회는 특별한 다른 점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1세기 당시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일반 유대인들과 함께 삶을 영위하였다. 오늘날처럼, 1세기경 유대교는 매우 다양한 면들을 있었으며 실로 유대교는 하나의 세계 종교라고 불릴만했다. 유대교는 지중해 지역뿐 아니라 로마 제국을 넘어 동방의 파티안 제국까지 전파되었다. 유대교의 다양한 분파들은 성전과 토라의 기초아래 연합되었다. 하지만 토라 이외의 히브리어 정경은 아직 분명하게 확정되지 않은 때로 매우 다양한 저자들이 각 분파들에 의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그렇지 않기도 하였다.


심지어 유대 제사장 제도 역시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었다. 예를 들어, 주전 160년경, 살해당한 대제사장 오니아스3세의 아들 오니아스 4세는 이집트의 한 도시, 레온토폴리스의 한 신전에 머물기도 하였다. 그는 고대 시대로부터 공인된 제사장 계열인 사독의 후손이었다. 그러한 그가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인 이집트에 성전을 만들었다. 이것은 신명기의 명령에 반하는 행위였다. 그렇다면 그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였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는 진정한 유대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가 이집트에 머문 것은 진정한 유대교의 유지를 위해 취한 조치였다.


요세푸스는 유대교내의 다양한 분파들이 주장하였던 신념과 의식들을 기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교는 분리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분파들중에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도 포함이 된다. 사두개파는 귀족 계열에 속해 있었으며, 바리새파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이들이었다. 요세푸스는 또한 에세네파를 소개한다. 게다가 요세푸스는 다른 메시야 운동을 벌였던 분파들을 알고 있었다. 제 1차 유대봉기 (주후 66-70년)때 젤롯과 시카리파 역시 유대교의 분파들이었다.


주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파괴한후 일종의 유대교 재건이 요구되었다. 이 재건과저에서 다양한 유대 분파들 사이에 경쟁이 있었으며 결국 바리새적 랍비 분파가 탄생하였다. 70년 이후에 기록된 마태복음은 유대교 재건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분파들 사이의 경쟁 구도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마태는 매우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해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17-20)


30년대 초반 예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제자들은 유대교내에서 그들만의 조직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70년 이후에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신흥조직에게 요구되는 것은 예수가 생존하였을 당시 가르침에 대한 신학적 정립과 해석이이었다. 예수의 추종자들이 보여준 다양한 관점들은 넓은 시각에서 볼때 유대의 전통적인 해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실, 이들은 유대 전통과의 기본적인 관계에 대해 그 어떤 반발을 하지 않았다.


초대교회의 예수 십자가 사건과 부활에 대해 기존 유대교에서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흔히 Q라고 불리는 문서 자료와 최근에 나온 도마 복음서에 의하면 한 유대분파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를 단순히 지혜자 정도로 여겼다. Q문서와 도마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간접적으로 언급만 할 뿐이다. 즉 그들은 하늘의 지혜자로서 예수의 목소리가 계속 전달된다고 말한다. 이 분파의 반응에 의하면, 지혜자였던 예수는 그들의 분파내에 한 인물이었다. 그 예수가 전하는 지혜의 목소리는 현재 진형형으로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볼때 예수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본다.


다른 분파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예수 자신의 가르침을 중대한 위기에 처하게 할 뿐이라고 한다. 이들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종말론적 위기로 인정하고 이 세상의 삶이 거의 끝에 다달았다고 본다. 따라서 이 종말의 때는 시험과 심판의 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획이 재 확립되는 새시대를 기대할 때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부활 경험은 이스라엘의 기적적인 재탄생의 신호가 된다고 주장한다. 종말론적 문제에 있어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었던 에세네파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유대 종말론 관점의 모델들을 제시하였다.


예수를 따르던 추종자들 중에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그노시스적(영지주의) 지혜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이 세상의 보이는 현실적 존재보다 보이지 않는 현실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은 일종의 계시야 말로 구원과 실제적인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바울의 경우를 보자, 그는 유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바울 이전의 그노스시적인 문서, 예를 들면 "유그노시투스 서신" 과 "아담의 묵시"를 거부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사상을 전적으로 배격하였다. 바울은 이런 사상적 관점에서 믿음과 율법의 차이점을 필역하였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갈 3:23, 25).


로마서 10:4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된다고 선포한다. 이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모든 율법과 이 율법이 지닌 권력의 마침이 된다고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유대교에 뿌리를 둔 다양한 분파들 가운데 하나였다. 유대교의 다양한 분파들은 유대교 자체에 반발을 하였다기 보다는 신약성서 시대 당시 유대교의 다양한 변화가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한 분파이다.

1세기말에 이르면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서로를 대적하기도 하고 다른 분파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의 주된 이유는 로마 제국의 회유와 위협때문이다. 유대교 분파들의 분열은 제 1차 유대 봉기(주후 66-74년)와 제 2차 봉기 (132-135년)에 사이에 가속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파들에 속한 일부 사람들은 로마의 정치적 지배를 수용하려고 한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 공동체가 위험에 빠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유대교내에서 고위직에 속한 사람들뿐 아니라 초기 기독교 교회의 일부 사람들은 로마에 의해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는 것을 제외한 예수 전통 혹은 유대교 전통을 세우기 위한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이 유대교의 주류가 되었든지 혹은 초기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든지 각각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로마의 압제를 피하면서 정치권과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이 둘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그 골이 점점 깊어지게 되었다.


근 2천년동안 기독교는 바울이 로마서 11:17-22에서 한 이방인들을 항햔 경고의 메시지를 들어왔다: "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마누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꺽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사실 바울의 경고는 무시되어 왔다. 셀 수도 없는 반-유대교 운동이 초기 기독교 당시부터 현재까지 기독교에 의해 자행되어 왔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후기 기독교 교회들은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경고한 메시지를 그들의 머리 위에 쌓아올리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예수와 초기 기독교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유대인들을 핍박해 온 이들이, 예수와 베드로 그리고 바울이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원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Translated from "Was the Early Church Jewish?" By Dieter Georgi BR 17:06, Dec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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