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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왜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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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투탄크하몬 (주전 1347 - 1337년)의 묘에서 발견된 바로의 상.

출애굽기 기사는 "의지에 관한 고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 이스라엘 야훼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모세와 이집트의 통치자 바로 사이의 의지 행사 - 그 중에서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바로의 마음이 강팍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야훼의 능력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을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떠날 것을 바로가 약속하였을때, 야훼는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였고 바로는 그의 마음을 바꿨고 그 결과로 연속적인 재앙이 닥쳤다.

어쩌면 마음을 강팍케 한다는 것은 시적 표현으로 바로의 완고함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 문화와 신화의 뒷배경을 이해한다면 강팍해진 마음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접근은 그리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출애굽기 기사를 이집트라는 설정을 통해 조명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출애굽기의 저자는 이미 이집트 세계, 특히 이집트의 종교를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야훼의 능력과 바로 자신을 포함한 이집트 신의 능력 사이의 경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모세"는 이집트 이름이다. 투트모세스 (Tuthmosis)와 람세스 (Ramesses)등의 이집트 이름과 모세는 같은 어근에서 파생한 것이다.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 (Phinehas - 핀하스 - 히브리식 발음, 출 6:25) 역시 이집트 이름이다. 비느하스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임한 염병을 멈추도록 한 인물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민 25:6-8).

이보다 더, 출애굽기 7-12장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야훼께서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은 이집트인들이 섬기는 자연속에 의인화된 이집트의 신들을 향한 것이었다. 아마 가장 분명한 예는 아홉번째 재앙으로 태양이 그 빛을 잃고 3일동안 그 빛을 발하지 못한 재앙이었을 것이다. 태양은 자연 만물중에서 이집트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신인, 아몬-레 이다. 태양의 순환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아몬-레의 뜨는 것은 새로운 생명과 생장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그는 창조의 신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아몬 -레가 서쪽으로 지는 것은 죽음과 죽음후의 지하세계를 뜻하는 것이었다. 출 12:12에서 야훼는 아몬-레가 뜨는 것을 막음으로 생명의 탄생이라는 상징적인 활동을 효과적으로 막았다. 출 12:12는 논쟁거리가 될만한 구절이다.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름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히브리인의 야훼는 자신의 초월적인 우월성을 거짓 신들과 이집트의 다신교에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 관심을 갖지는 않지만, 바로 역시 하나의 신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출애굽기의 전쟁은 야훼와 바로 사이, 모세와 바로 사이의 전쟁이었다. 이집트의 왕은 신으로서 땅을 통치하였다. 그는 아몬-레의 성육신한 존재이자 아들 혹은 호루스 (매의 모습을 한 태양신), 혹은 이집트의 높고 낮은 신들의 결합이다. 이집트 중기 왕국시대 당시 세상을 떠난 니-마트-레 (아멘엠헤트 3세, 주전 1842- 1794년)의 신격화에 대한 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바로 니-마트-레를 경배하라! 그는 영생하시며 너희들의 몸에 거하느니라. 그의 주권을 너의 가슴에 품으라. 그는 "레"이시며 그의 빛으로 인해 너희는 볼수 있으며 그는 두개의 땅을 태양 평원반 (the sun disc)보다 더 비추는 분이시다."

위 텍스트는 비문중 일부분만을 인용한것으로 이집트인들의 바로에 대한 신성을 이해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바로는 영원할뿐 아니라 경배의 대상이며 전능자이다. 그는 이집트에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불어 넣으며, 그는 "카"(생명의 기운과 이집트의 영혼)이다. 그는 신들로부터 내려온 존재이다. 룩스오르와 데이르 엘 - 바하리의 문서에는 최고의 신 (아문 혹은 아멘-레)이 바로를 생산하기 위해 여왕의 어머니와 성교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는 신들의 궁전으로 간다. 그곳에서 바로는 곧바로 삶과 죽음을 연습한다. 어떤 기념물들은 망자가 된 왕이 "자신이 기뻐하는 이에게 호흡을 준다" 라고 선언을 한다. 이집트인들은 자연의 요소들 조차도 죽은 왕에게 복종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집트인들이 의지해서 살고 있는 나일강의 범람 역시 죽은 왕의 의지로 인해 일어난다고 그들은 믿었다. 정교하게 만든 매장 건축양식은 죽은 바로를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는 또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바로가 이집트를 축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죽은 왕을 향한 제의를 신뢰하는 이들은 지속적으로 그에게 헌물과 경배를 드렸다. 제 18왕조 (주전 1550 - 1307년)의 대신인 레크미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높고 낮은 이집트를 축복하는 왕은 누구인가? 그는 사람의 생명, 모든 인간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치하는 이로 홀로 계시며 그 누구도 그와 견줄 수 없다"

히브리 신인 야훼와 이집트의 신 사이의 충돌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출 5:1에서 모세는 바로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성서에서 선지자가 (모세와 같은)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고대 근동지역에서 신의 권위있는 말씀으로 최후 통첩을 전하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다른 말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는 신들로부터 직접 전달되는 선언이었다. 선지자의 역할은 단순히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었으며 이집트인들 역시 모세가 사용한 이러한 신적 선포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집트인들의 문서에는 동일한 방법으로 신의 메시지를 선언한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자의 책 (the book of the Dead)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 아툼이 말한다..."

바로가 모세의 선포를 들었을때, "야훼가 말한다..." 그는 히브리인의 신이 자신에게 정면 도전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바로의 신하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해 "바로가 말한다..." (출 5:10)라고 말한다. 이는 모세가 선포한 야훼의 신적 위치와 바로의 위치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신인 바로는 야훼의 도전장에 그 자신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다.


모세와 바로의 신하들 사이에 있었던 뱀의 대결에서 (출 7:8-13)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야훼의 마술적 능력을 증거하는 기적을 요구한다. 이 작은 충돌에서, 야훼의 사신들은 아론의 지팡이를 뱀으로 바꾼다. 바로 역시 같은 방법으로 그의 주술사들이 지팡이를 뱀으로 둔갑시킨다. 하지만 야훼의 능력이 더 우위에 있었다. 왜냐하면 아론의 지팡이가 주술사들의 지팡이를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뱀 혹은 코브라는 이집트 새왕조 당시 바로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바로의 왕관에 새겨진 두 마리의 황금 코브라는 왕의 존귀와 주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이집트의 상부와 하부 지역을 관할하는 통치권). 따라서 뱀을 통한 야훼의 도전은 바로가 지니고 있던 권력의 핵심을 직접적으로 공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와 야훼의 신적인 충돌에 대한 원리적인 모티브는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보내라는 야훼의 명령에 대한 바로의 연속적인 거부가 있을때마다 사용되었다.

바로의 마음 상태를 표현할때 3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이 사용된다.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하자크" (출 4:21, 9:12, 10:20, 27, 14:4, 8)이며, 경우에 따라서 "카샤" (출 7:3), 그리고 "카베드" (출 10:1)가 사용된다. 카베드는 문자적으로 "무겁다"라는 뜻으로 이집트의 신화속에서 "마음(심장)"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때 사용된 것이다. "하자크"는 거칠고 강하다는 표현이다. "카샤"는 어렵게 하다 혹은 고집스럽다 라는 의미이다. 이 세단어들이 서로 교체 되어가면서 본문상에 나타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단어의 뜻을 동일하게 해석한다.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다" 혹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다". 이집트 신화의 프리즘으로 볼때 가장 적절한 해석은 "그의 심장을 무겁게 하다" 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과 충돌 상황을 이집트의 문화라는 상황에서 본다면, 바로의 마음이 강팍헤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왜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였을가?

고대 이집트의 신성한 문서에서 "심장 (이브)는 사람의 본질적인 속성을 나타낸다. 이집트학의 대가인 E. A. Wallis Budge는 "이브"를 사람의 "심장, 중간, 내면, 감각, 지혜, 이해, 지식, 주의, 의도, 기질, 태도, 의지, 소원, 열망, 생각, 용기, 정욕, 자아"등으로 정의한다. 이브는 "바 (영, 혼, 육)으로부터 구분되며, "카"는 생리적 힘을 뜻하는 것으로 그림자와 같고 사악한 개념을 지닌 것이다. "이브"는 내적, 영적 중심으로 이집트 종교에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은이의 심장 무게를 진실의 저울에 달아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그가 받아야할 상벌을 정한다. 죽은이의 심장이 저울의 반대편에 올려진 깃털과 동일한 무게가 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일 심장 무게가 더 나간다면 죽은이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다.

사자의 책 (아니의 파피루스)은 심장의 무게를 재는 과정을 드라마틱한 글과 그림으로 묘사하였다. 책에는 아니와 그의 아내 투투가 심판자리에 등장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그들은 신들에게 경배와 신들의 심판에 복종할 것을 맹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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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진실의 심판 - 왼쪽에는 개 혹은 자칼의 머리를 지닌 아누비스가 서있다. 죽은 자의 심장을 왼쪽 저울판에 올려놓고 오른쪽 저울판에는 깃털을 올려 놓는다. 오른편 아래에는 아메니트가 죽은 자의 심장의 무게가 더 무거울 경우 그것을 삼켜 버리기 위해 대기하고 있으며, 오른편 저울판 옆에는 토스 (서기관)가 심판의 결과를 기록하기 위해 서 있다.

만일 그의 심장이 너무 무겁다면, 아니는 죄인으로 취급될 것이고 아메니트 여신에게 던져질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의 심장이 깃털보다 무겁지 않다면 아니는 의인으로 여겨지게 되고 영생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아니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나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나의 심장이여! 나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나의 심장이여! 나의 몸속에서 형성된 나의 심장이여! 나를 고발하는 증인으로 서지 마라! 아세스로스 앞에서 나를 대적하지 마라! 무게의 균형을 잡는 이앞에서 나와 싸우지 마라! 너는 나의 뱃속에 있는 "카"이다. 행복한 곳으로 나를 가게 하라. 사람을 창조한 이앞에서 나의 이름이 악취가 나지 않게 하라! 신의 존전에서 나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마라!

아니의 호소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죄인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토스는 이 심판을 선언한다:

토스, 진실의 심판, 오시리스의 존전에 있는 위대한 엔네아드 (신들의 재판소)에게: 이 중요한 진실의 연설을 들으시라. 그 심장 (아니의 심장)은 오시리스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의 혼이 그 자신을 증거하기위해 서 있습니다. 그의 행위는 위대한 진실의 저울앞에서 옳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에게서 그 어떤 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신전에서 그 무엇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상해한 적도 없습니다. 그가 지상에 있을 동안 악한 말이나 거짓말을 행치 않았습니다.


의로움의 균형이 잡혔고 엔네아드 혹은 신들의 재판소는 아니가 받을 미래의 삶에 대해 최후 선언을 한다. "그 어떤 죄도 범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처럼 악이 없다. 아메니트는 그를 차지할 그 어떤 권리도 없다." 아니는 갈대밭, 이집트인의 천국 혹은 사자의 거처로 인도된다.

사람의 심장은 그가 영생에 들어갈지 그렇지 못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만일 사람이 잘못된 행위를 행함으로 그 심장이 무겁게 된다면 그는 소멸된다. 만일 그의 심장이 고결, 진리, 그리고 옳은 행위로 충만한다면 그 사람은 보호를 받으면서 천국의 축복된 자리로 인도된다.

사자의 심장은 다양한 장신구들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장신구는 "스카라베우스 사케르"(왕쇠똥구리)로 사자의 책에 있는 단어들이 새겨져 있다. 스카라베우스는 쇠똥구리의 모양으로 부적 혹은 기호로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집트 왕조에서 가장 인기좋은 상징물로 수천개가 발견되었다. 일반적으로 부적은 유약을 바른 채색 도기 혹은 다른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지며 아래부분에는 문장, 이름, 혹은 다른 상징적인 기호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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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카라베우스와 바닥에 기록된 글


왕쇠똥구리는 배설물을 굴려서 둥근 공처럼 만들어 땅속에 그것을 묻는다. 이것이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태양을 하늘로 가로지르게 한후 땅속으로 밀어 넣어 저녁이 되게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왕쇠똥구리를 태양과 태양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상에서의 모델로 채택하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둥근 배설물에서 새로운 왕쇠똥구리가 탄생하는 것을 보았다. 왕쇠똥구리는 성구분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쇠똥구리의 유충시기에 자연과정을 거처, 다른 말로 자아-생식을 한다고 믿었다. 풀타르크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왕쇠똥구리는 암컷이 없이 모두 숫컷이다. 왕쇠똥구리들은 알을 작은 공처럼 생긴곳에 낳는다. 그들은 그 알갱이들을 보이지 않는 다리로 옮기는데, 이는 마치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서 서쪽으로 이동해가는 것과 유사하다.

왕쇠똥구리가 단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집트인들의 사상은 태양신이 그 자신 스스로를 창조하였다는 그들의 신앙과 병행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쇠똥구리를 인간의 심장과도 연관지었다. 즉 감정의 자리, 지식과 혼의 중심, 인간의 특성과 성격의 장소로 이해하였다.

야훼가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였다는 것은 반드시 위와 같은 이집트인들의 신화적 사상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인의 신은 바로의 심판자로 서 있다. 야훼는 이집트 왕의 심장 무게를 달고 그 결과를 선포한다. 바로는 그 심장의 무게로 인해 죄인으로 선고를 받고 심판을 받는다. 이는 바로의 완전함을 신앙하던 이집트인들에게는 놀랄 수밖에 없는 심판이다. 출애굽기의 본문들은 종종 이집트인들이 바로를 알현하여 부복하며 다음과 같이 호소하는 것을 기록한다. "땅에서 악취가 나며 벌레들이 기어다닙니다. 이 완전한 신에게 탄원을 하고 그의 아름다움을 높이십시오." 성서의 택스트가, 야훼가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였다고 말할때 이는 바로에게는 전혀 오점이 없고 순전하다는 매우 일반적인 이집트인들의 사상을 정면으로 논박하는 것이다. 출 9:34는, 죄의 개념과 강팍해진 마음을 분명하게 연결시킨다.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곡 같더라"

이집트인의 신앙사상에서는 바로의 심장은 역사와 사회의 모든 분야를 통제한다. 하지만 야훼는 그러한 바로의 마음(심장)을 다스린다. 심지어 그 심장을 무겁게(완악하게, 강팍하게) 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히브리인의 신만이 진정한 우주를 다스리는 최고의 신임을 증거한다.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한다는 표현의 궁극적인 목적은 야훼에게 영광을 돌리고 오직 야훼만이 온 우주를 다스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서 택스트도 이를 증거한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출 14:4)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출 14:17-18).

출애굽기 14장의 이 두구절에는 흥미로운 언어 유희가 담겨져 있다. 두구절 모두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함으로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광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카보드"이다. 이 단어는 "카베드" (무겁다)라는 단어와 어근이 동일하다. 사실, 이 단어들은 서로 관련이 있다. 존귀는 사람에게 일종의 무게와 같다. 동일한 어근이 마음(심장)에 적용될때, 이 단어의 뜻은 "무겁다"가 된다. 반면, 이집트인들에게는 "죄"를 의미한다. 따라서 카보드 (존귀 혹은 영광)는 야훼에게 속해 있으며 "카베드" (죄로 인해 무거워진 심장)은 바로에게 해당된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 이야기를 이해하는 중심이 된다.


Translated from BR 9:06, Dec 1993 Why Did God Harden Pharaoh’s Heart? By John E. Curr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