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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알레포 사본이란


사진: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유월절 기간에는 슈퍼마켓에 있는 누룩이 들어간 제품들을 하얀 천으로 가립니다. 즉 판매 금지 조치가 취해지는 것입니다. 누룩은 단순히 식품 종류뿐 아니라 치약에도 들어가더군요.


알레포 코덱스는 맛소라 사본들 (모음, 천트 표기, 맛소라 주석들이 포함된 사본들)에 속한 것이다. 사해 사본이 기록된 이후, 위와 같은 형태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택스트는 대략 9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이다. 즉 근 천년 동안, 8세기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게니자 조각들을 (게니자 - 회당에서 읽는 성서중 낡아서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것을 폐기 처분하지 않고 일종의 성서 무덤에 안치시켜 놓는것)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세대를 거쳐내려오면서 성서는 수천개의 사본들로 필사가 되었다. 이 사본들은 서로 다른 택스트들을 가지고 있다. 즉, 년대, 기록 장소, 서체, 단어의 준말 혹은 완전 형태, 모음 표기, 찬트 표시 등 여러 차이점들을 지닌다. 몇몇 오래된 사본들은 알레포 사본과 유사한 사본들로 판명이 되었다. 이 사본들은 주로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기록된 것이다. 이중 대표적인 사본이 바로 알레포 코덱스이며, 알레포 코덱스와 매우 유사한 다른 사본인 레인그라드 코덱스는 이집트에서 1008년 사무엘 벤 야콥에 의해 기록되었다. 훗날 알레포 코덱스의 분실 부분을 복원할때 학자들은 주로 레닌그라드 코덱스를 참고하여 알레포를 복원하기도 하였다.


알레포 코덱스는 맛소라 학파 이래 가장 중요한 성서 사본이다. 알레포는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의 가장 엄격한 4-5개의 사본들에 속한 것이다. 이 시기에 기록된 사본들중 일부는 모세 오경, 혹은 전기 예언서만이 기록된 사본들이 있다. 이들중 대략 50여개의 사본 조각들이 남아 있는데, 100여장 이상 보존된 것도 있지만 겨우 몇장 혹은 성서의 몇부분 만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학자들은 이렇게 남아 있는 사본들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각도로 연구를 해왔다. 이 연구는, 단어, 모음 표기, 찬트 표시, 악센트등을 비교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식의 비교연구만으로는 사본의 진정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비교 연구를 위한 기준이 되는 사본이 없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정확하다 혹은 부정확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본의 진정성을 알 수 있을까? 두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내적 방법과 외적 방법이 있다. 내적 방법은 사본 자체의 일관성을 조사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어떤 사본들은 매우 순도 높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간혹 모음이나 찬트 표기가 누락된 경우 혹은 찬트 표기 방법이 파괴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사본의 필사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알레포 코덱스는 성서 사본들중 가장 오래된 정확한 사본으로 알려진 것으로 주후 930년경에 기록된 구약성서 전권입니다. 근 천년 이상, 이 사본은 근동, 디베랴, 예루살렘, 이집트, 그리고 시리아의 알레포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 보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47년, 유엔이 이스라엘 국가를 팔레스틴에 세워준다는 결정을 한 후 시리아에서 있었던 폭동에 의해 사본의 일부분이 손상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본이 완전히 불타 버린줄 알았으나, 훗날 사본의 대부분이 비밀 장소에 숨겨졌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1958년 알레포 사본은 시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밀반입이 되어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츠하크 벤지비의 손에 넘겨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에 알레포 사본이 전달된 후, 다양한 분양에서 심도있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맛소라 학자들과 성서 학자들은 알레포 사본들과 관련 사본들을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 다른 사본들과의 일치 정도보다, 알레포 사본의 쓰기와 맛소라 택스트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학자들은, 알레포 사본의 모음 표기와 찬트 (멜로디) 표기, 게이오트 표기 (일종의 악센트 표시), 그리고 맛소라아 비평 장치를 비교 연구하였다.



이스라엘에 전달된 알레포 사본은 총 294 쪽의 가죽이었으며 택스트는 가죽의 양면에 기록되었다. 사본의 일부는 1947년 시리아 폭동 당시 파괴되었으며, 사본의 앞부분인 모세 오경 부분이 대부분 손상되었고 오경의 마지막 11쪽만이 남아 있었다. 즉 모세 오경중 마지막 책인 신명기서의 마지막 5장만이 보존되었다. 또한 알레포 사본의 마지막 장과 아가서 일부분, 전도서, 예레미야 얘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그리고 느헤미야 전부분이 사라졌다. 예언서 중에는 일부분이 사라졌다. 원래 알레포 사본은 총 487 쪽이었다.



사본의 사라진 부분을 찾는 시도와 함께, 이 부분에 대한 복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어떻게 사본이 사라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불에 타버렸는가? 혹 아니면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가? 그 동안 노력해온 것에 비해 아무런 것을 얻지 못한것은 매우 실망스런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적어도 두가지는 성공했다. 알레포 사본, 역대기의 한 페이지가, 시리아의 알레포에 있던 한 가족에 의해 뉴욕으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그 페이지는 예루살렘 국립 박물관에 전달되었고 알레포 사본에 추가되었다. 또 한가지는 모세오경의 한 부분이 발견되었다. 출애굽기의 한 부분이 알레포에서 온 한 남자의 지갑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는 이 사본 조각을 일종의 행운을 비는 부적으로 사용하였었다. 아직 이 조각이 예루살렘에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복사를 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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