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Story

베두인 전통 문화를 통해 본 창 34장 디나 사건


유대 광야와 브엘세바 지역을 지나다 보면, 지금도 목양 생활을 하고 있는 베두인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창이 되기도 합니다. 아래 글은 베두인 전통과 문화를 통해, 성서의 사건 특별히 디나의 강간 사건 (창 34)를 조명한 것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복수는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베두인들에게 철칙으로 여겨집니다. 일종의 "명예 살인" 이라는 명목하에, 중동 지역의 아랍인들중에는 지금도 공개 살인을 행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창 34장의 디나 강간 사건을 중동의 문화, 특히 베두인 전통을 통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아브라함은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브엘세바의 광야로 내보내면서 (창 21:14) 그녀의 어깨에 물 가죽 푸대를 얹혀주었다. 오늘날 시나이 반도와 네게브 광야에서 살아가고 있는 베두인 목동들도 염소 가죽으로 만든 물 푸대를 갖고 다닌다. 염소 가죽의 유공성(porosity)은 뜨거운 날씨에도 물을 시원하게 보존할 수 있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엣날이나 지금이나, 근동 지역의 광야에서의 삶은 생존을 위한 비슷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빈약하기 그지 없는 비가 내리는 광야에서의 삶의 적응을 위해 생존을 위한 몇몇 생존의 방법들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거대한 광야의 도전앞에 서 있는 그들의 문화는 지리적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상관없이 엇비슷하다. 따라서, 성서 속의 족장들이 살았던 유대 광야와 네게브 광야의 삶, 그리고 시나이 반도에 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현재 이 지역들에서 생활하고 있는 베두인들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광야 문화는 성서의 그것과 공통점들이 있으며, 베두인들의 쉬는 공간, 도구, 옷 등 역시 비슷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아가서 (1:5)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에서 "게달의 장막은 베두인이 사용하는 겨울 텐트와 동일한 것이다. 베두인들은 겨울 텐트의 지붕을 검은 염소털로 엮어 만든다. 비가 내리는 시기에 이 염소털은 자연스럽게 물에 부풀어 오르면서 방수 효과를 나타난다. 비가 내리게 되면 그 검은 염소털은 반짝 거리게 되는데, 아가서에서는 이를 '검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한 듯 하다. 


일반적인 광야 문화는 미묘한 부분들이 있다. 결혼을 앞둔 딸을 둔 아버지는 구혼자의 가족과의 연합을 위한 의식을 치룬다. 그는 즙이 많이 들어 있는 광야의 식물을 취하여서 두개로 자르거나 꺽는다 그리고 그 한 부분을 구혼자 혹은 그의 아버지한테 준다. 이는 언약의 자름  (cutting a covenant)이라는 성서의 관습처럼 (창 21:32) 광야에서 구하기 힘든 귀한 것을 함께 나눔으로 언약 관계를 맺게 되었다. 예를 들면 수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식물은 겨울과 봄철에 동물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귀한 것이다.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광야의 문화는 3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 진행형이다.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보았을 때 그는 그들에게 나아가 인사를 나누었다 (창 18:2). 롯 역시 손님들을 영접하였다 (창 19:1). 오늘날, 베두인의 시를 보아도 얼마나 이들이 손님 대접을 잘하는가를 알 수 있다. 


"만일 먼 곳으로부터 오고 있는 여행자들을 살피고 있다면, 그 여행자들이 당신을 보고 당신에게 나아올때까지 탠트앞에 서 있으라" 


교육을 받지 못한 유목민의 사회이지만 시적 표현에서 압운법(rhymed)이 적용된 것은 주목할만 것이다. 종종 전쟁 무기에 주술적인 효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한 시적인 표현들이 있었는데, 성서에서도 이런 표현들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베두인 문화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 반도를 지나 트렌스 요르단쪽 길을 통해 약속의 땅으로 이동 중일때, 모압왕 발락은 벌때처럼 몰려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매우 두려워 하였다. 그는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도록 하였다 (민 22:6)




이런 종류의 주술적 능력이 말로 표현된 것을 베두인 사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19세기경 베두인 전통에 의하면, 네게브 광야에 거주하는 테라빈 부족이 티야하 부족의 땅을 침범하였을때, 티야하 부족의 장로들은 시인들을 불러서 타레빈 족이 전쟁을 단념케 하기 위한 시를 쓰도록 한다.1982년, 테라빈 부족은 부족민 중 가장 뛰어난 시인 아나즈 아부 쌀림 알-우르디에게 시나이에 거주하는 티야하 부족이 전쟁을 단념케 하기 위한 시를 써서 보내도록 한다. 따라서 광야의 사회에서는 강력한 시적 표현들을 통해 그들의 부족을 보호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유월절 때, 유대인들은 무교병을 먹으면서 그들의 조상이 이집트를 떠날때 행했던 일을 기념한다. 종종 이러한 행위는 시나이 반도에서의 고난 혹은 서둘러 떠나야 했던 이집트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렇게 무교병을 먹는 이유는, 정착된 삶을 살아가는 이집트인의 삶으로부터 출 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짓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베두인의 무교병과 정착민의 빵 사이에는 고대적으로부터 다른 점이 있었다. 19세기경 네게브에서 있었던 베두인 전쟁 (1875-1887) 당시 타레빈 부족은 적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적들은 베두인의 빵을 모닥불에 구워서 먹지 못하고, 그 적들과 가까운 거리에 거주하는 바레이 마을에 있는 빵을 굽는 오븐에 빵을 구워 먹는다는 조롱을 하기도 하였다. 


1940년대, 네게브에 거주하는 한 시인은, 베두인 족장이 부족의 땅을 유대인 단체에 팔았을때,  정착민으로서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조롱하면서 그 부족은 요리된 음식과 부드러운 빵만을 원한다고 조소를 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18세기경 이라크에 있는 베두인 족장은 그 자신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도시 상인의 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하였다. 


당신은 정착된 삶에 익숙하겠지만, 우리 베두인들은 다 타버린 재위에 우리의 빵을 구워 먹는다. 


유대 절기들 중 초막절 (혹은 장막절)은 시나이 반도에서의 삶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명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수카 (초막)를 만들고 하늘의 별이 보이도록 지붕을 종려나무 가지로 엮어 만든다. 그런 후에 그 초막에서 먹고, 자기까지 한다. 초막절은 가을철에 행하는 절기로 광야의 늦 여름과 가을은 일년중 가장 어려운 시기이다. 뜨거운 태양열은 광야의 풀들을 메마르게 할 뿐 아니라 지난 겨울철에 저장해 놓았던 물도 바닥을 드러내는 시기이다. 게다가, 아직 비가 내리려면 더 기다려야만 한다. 가축들은 매일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유목민들은 그들의 이동을 멈추고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임시 정착을 한다 (창 26:20, 아 4:15). 이때, 베두인들은 겨울 탠트를 손질하기 위해 잠시 동안이지만 나무로 만든 초막에 거한다. 


이런 베두인들의 생활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초막 경험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초막절때, 성서는 다음과 같이 명한다.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23:42-43). 


또한 베두인 문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성서의 사건들 중 하나는 디나가 강간을 당한 사건이다 (창 34).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보낸 후, 그와 그의 가족들은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온다. 그들이 세겜에 이르렀을때  하물의 사랑받는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보고 그녀를 강간한다. 




이 사건 직후, 하몰은 그 아들 세겜을 위해 야곱에게 가서 디나를 세겜과 결혼시킬 것을 부탁하면서 세겜 족속과 야곱 집안 사이의 상거래를 제안한다. 하몰은 야곱 가족을 환영하고, 자신의 땅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까지 한다 (창 34:10). 세겜은 야곱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한다 (창 34:12).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속임수를 써서 말한다. 왜냐하면 세겜이 디나를 욕보였기 때문이다 (창 34:13). 그들은 만일 세겜 족속이 자신들처럼 할례를 받으면 그들과 서로 통혼도 하고 함께 거주하겠다고 말한다. 


이 제안을 받은 세겜과 하몰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부족민들을 설득시키고 부족민 전체가 할례를 받는다. 그리고 할례후 3일이 지나 고통이 가중될때, 디나의 친 오빠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부족민들을 공격하여 몰살 시킨다 (창 34:25-26). 다른 형제들은 세겜 부족의 가축때와 재물들을 탈취한다 (창 34:27-29). 이에 두려움에 빠진 야곱은 아들들을 질타하지만 그들은 다음과 같이 야곱에게 답을 한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창 34:31). 


많은 사람들은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족속에게 행한 일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사실 야곱 자신도 아들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였으며 그가 죽는 자리에서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하기도 한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주저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 49:5-7). 


하지만, 광야의 베두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야곱의 아들들은 광야의 법칙대로 행한 것이었다. 광야의 원칙을 이해한다면 성서의 사건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광야에서는 가축때를 이끌고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필수적이다. 유목민들은 가축때을 먹이기 위해 풀을 찾아야만 하고 그 어떤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근동 지역의 유목민들은 몇가지 전략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피의 복수를 하는 것이다. 아랍어로 이 피의 복수를 하는 일종의 집단을 "함사"라고 하는데, 원 의미는 숫자 5을 뜻하고 부계 (patrilineal kinship)의 5촌까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집단은 서로간의 상호 책임을 지고 있고 모든 남성들은 서로를 보호해야 하며 공격을 받았을때 반드시 복수를 해야만 한다. 따라서, 한 개인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집단을 위해 존재한다. 


베두인의 함사 원리는 다른 집단이 공격전에 단념하도록 하는 것 뿐 아니라, 집단의 보호를 위해 취할 수 있는 권리 행사, 그리고 그 어떤 가벼운 침해도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함사를 실행해 옮기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유악하기 때문이다. 


유약해 보이거나 쉽게 공격을 당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광야에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그 자신들은 균형을 잃은채 올려진 낙타 안장과 같은 것이다. 이미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낙타를 타고 앞으로 나갈수 없다. 사실, 베두인들에게 정의라는 말은 균형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등한 정의를 상실하게 된 경우 베두인들은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베두인들이 복수를 할때, 이는 단순히 공격자를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집단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자신들의 힘을 무시한 개인과 집단이 얼마나 그로 인해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무력 행사이다. 이러한 무력 행사를 통해 그들은 정의를 행하고 광야에서의 삶을 유지한다. 


시므온과 레위는 두려움에 빠진 야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창 34:31). 그렇지만 그 속뜻에는, "아버지 우리는 이 약속의 땅에 이제 막 들어와서 정착을 하려고 합니다. 만일  우리의 누이가 강간 당한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서 정착을 할 수 있겠습니까?" 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시므온과 레위의 복수 후에, 야곱의 가족이 벧엘로 올라가는 과정에 다음과 같은 말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쿠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 35:5). 


한편, 베두인 사회에서 모든 권리에 대한 침해 - 그것이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나, 재산을 빼앗는 것 혹은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되었든 - 여성의 혹은 처녀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가장 중대하게 취급되었다. 전통적으로 베두인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부- 그들의 가축-을 여성들, 즉 그들의 부인들과 처년들이 돌보도록 한다. 여성들이 재산을 위임받아 돌보는 동안, 남성들은 다른 일들, 예를 들면, 목초지를 찾고, 부족이 거할 안전한 장소들을 물색하고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전쟁 혹은 싸움을 대비하는 일을 한다. 오직 복수와 사회적 평판을 위해 엄격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들의 여성들에게 외간 남자들이 접근하는  것이다.  만일 한 여성이 부정하게 된다면, 이것은 분명히 가해자가 그녀의 남자들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간주되거나, 혹은 그 남자들이 그런 수치스런 일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런 치욕스런 일을 막을 수 없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그 어떤 베두인도 관용으로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인해 시므온과 레위는 그 누이가 강간당한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처한 것이다.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또 다른 베두인 문화가 있다. 베두인들은 서로를 혈연지간으로 여기고 있으며 상호 책임을 지는 관계로 이해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그들은 혈통적인 부분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보였다. 따라서 다른 혈통과의 연합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여인들을 절대로 내어줄 수 없다는 점을 고수하였다. 일종의 순수 혈통의 유지를 위해 베두인들은 다음 두 가지를 가르쳤다. 1)여성이 도덕적으로 순결함을 유지할 것 (혹 순결을 잃을 경우 명예 살인을 허용한다). 2) 여성의 명예를 침범하는 경우의 결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남성들에게 가르친다. 여성의 침해에 대해 베두인들은 과하다 할 정도로 처벌을 내린다. 여기에는 엄청난 벌금과 공적인 자백을 요구한다. 또한 여기에는 과실을 저지른 이들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허락을 하기도 한다. 즉 물리적인 공격을 하거나, 살인을 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살인의 경우 희생자의 함사는 가해자가 반드시 피를 흘리도록 하는 것이며 그 가해자의 재산을 손대는 것은 금지한다. 재산에 손을 대는 것을 금하는 것은 복수의 순수한 의미가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강간의 경우 베두인들은 가해자의 재산을 7일 동안 약탈하는 것이 허용된다. 




베두인 문화는 세겜의 아버지인 하몰의 행동에 대해서도 이해의 눈을 열게 한다. 가해자는 반드시 유약함의 인상을 지워야 하는 것을 알기에, 자신들의 힘을 과시함으로 피해자가 그 분노를 가라앉히도록 해야 하며 복수하고자 하는 의지를 꺽어야만 한다. 


1972년 시나이 반도에 있는 "빌리" 라고 하는 작은 부족에 속한 한 사람이 당시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수와르카" 부족민의 오발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수와르카 부족은 이 문제를 다루면서 "빌리" 부족에게 복수를 하지 말아줄 것을 간청하였고 대신에 금전적 보상을 하겠다고 제안을 하였다. 당시 수와르카 부족은 빌리 부족에 비해 강력한 힘이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빌리 부족은 우리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피해를 입은 부족에게, 가해자의 부족의 리더는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 주겠다는 확약을 대표를 파견하여 알림으로 일어날 수 있는 복수를 막고자 한다. 창 34장에서 하몰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에게 나아와서 야곱 가족을 환영하고 보상의 방법을 제안하였다. 그들은 세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권리와, 목양, 그리고 디나와의 결혼, 그리고 상거래등을 약속하였다. 세겜 자신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하였다. 이는 매우 관대한 거래 조건이었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자신들이 이 새로운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일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창 34장을 부족민 간의 문제로 볼때, 야곱의 아들들이 선택한 복수의 길에 대해 야곱이 저주하였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위 글은 다음 저자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Bailey, Clinton. “How Desert Culture Helps Us Understand The Bible.” Bible Review, Aug 1991, 14-21,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