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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지역

세겜!


아브라함 (아브람)이 그 아내 사라(사래)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던 땅 (창 12:5-7).


훗날 예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만나, 그녀와 수가성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땅 (요 4:1-42). 


그 세겜에 다녀왔다. 오랫동안 기억 주머니속에 너무 깊이 파묻혀 있던 땅 세겜. 지난 2005년경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해 팔레스타인 택시를 타고 성서의 땅들을 밟았었다. 그땐, 카메라가 없었는지라 눈으로 스켄만을 하고 기억 주머니속에 담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있는데 무슬림이었던 팔레스타인 기사가 기도 시간이 되었다며 택시에서 내려 한 동안 기도를 하였고, 그 틈에 함께 동행하였던 이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길거리에서 해결한 것과 하나는 이스라엘 검문소에 다시 도착하였을때 기사 아저씨의 초긴장한 모습이다. 


2013년 4월 3일. 8년 만에 다시 들어가게 된 요단 서안 지역의 세겜. 그 땅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던 검문소는 폐쇄가 되었다. 이제는 이스라엘 차량 (노란색 번호판)을 타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위험한 일이겠지만, 나와 같은 동양인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은 그 어떤 용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을 돌고 돌아보았지만, 주로 요단 계곡길을 따라서 그리고 지중해변의 샤론 평야길을 따라서 돌았다. 즉,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있는 중앙 산악 지역 그것도 요단 서안 지역의 내부 깊숙히는 들어가 볼 기회가 없었는데 팔레스타인 지역 선교를 하시는 선교사님의 배려로 직접 그 땅을 다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번엔 기억 주머니에 의존할 수 없었기에 카메라를 준비했다. 문제는 그 카메라를 받쳐줄 광각랜즈가 반 영구 파업(?)을 하였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애물 단지 카메라에 망원랜즈만을 들고  그 땅을 밟을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진: 붉은선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때 이용하셨던 길 (요단 동편길). 예수께서는 중앙 산악지역에 있는 사마리아를 통과하실 수가 없었다 (눅 9장 참조) 



사진: 붉은선 동그라미(???): Burqin (열명의 문둥병자 사건), Sebasta (사마리아), Nabulus (세겜)



요단 서안 지역 (The West Bank)에는 성서의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하란를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 (אלון מורה) 아래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창 12:6-7). 그의 후손 야곱의 디나가 강간을 당한 땅이며, 그의 가족들이 소지하고 있던, 혹은 섬기던 이방 신상들과 고리 장식들을 묻었던 땅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였다 (창 35:4). 


세겜에서 북쪽으로 약 40여분을 달리면 요셉이 그 형들에게 붙잡혀서 애굽으로 팔려갔던 도단이 나타난다 (창 37장). 당시 도단은 국제 무역상들이 이용하던 무역로였다. 성서는 요셉을 사 갔던 이스마엘 사람들 (혹은 미디안 상인들)이 낙타에 향품과 유황, 그리고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가던 중이었다고 기록을 한다 (창 37:25). 


가나안 정복 기사를 다룬 여호수아서에도 세겜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호수아는 에발산에 제단을 쌓고 모세의 율법을 선포하였으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연설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수 8:30 & 24:25). 혼란의 시기였던 사사 시대 당시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과 요담 사이의 사건에도 세겜은 등장하며 (삿 9장), 북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은 세겜에 성을 건축하였다 (왕상 12:25). 


신약 성서의 이야기속에서도 세겜과 요단 서안 지역은 매우 중요한 사건 현장으로 나타난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 그리고 수가 성 사람들과의 만남 (요 4장), 강도 만난 자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눅 10장), 열명의 문둥병자 사건 (눅 17장), 그리고 예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막았던 사마리아인들 이야기 (눅 9:51-56). 무엇보다도, 사도행전 1장8절과 예수님의 제자들의 전도 사역에도 등장을 한다.


첫 장소로 도착한 사마리아 (세바스티아 - 누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아구스도 (Augustus - 라틴어)의 헬라식 표현)는 여러 고고학적 층들이 섞여 있다. 아합의 아버지였던 오므리 (기원전 885-874)는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았으며, 그 아들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를 크게 확장 시켰다. 훗날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사르곤 2세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기원전 722), 왕하 17장에 의하면 앗수르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사마리아 지역에 거주하기도 하였다. 




헬라 시대를 거쳐 이스라엘 독립 왕조였던 하스모니안 왕조 당시 히루카누스는 사마리아 지역, 특히 그리심 산에 있던 사마리아인들의 신전터를 공격하여 파괴하였고 (기원전 108년) 이 사건으로 인해 갈릴리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고 가던 길목에 있던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더 이상 통과할 수 없게 되었다. 







무너진 성터가 남긴 과거의 흔적 소리를 뒤로 하고 텔 발라타 (Tel Balata)를 방문하였다. 텔 발라타는 고대 세겜 마을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여러 시대의 층들이 있는데, 중기 청동기 시대로부터 헬라 시대의 층이 남아 있는 유적지이다. 텔 발라타는 에발산과 그리심산, 모레산, 그리고 이타마르산에 둘러쌓여 있는 옛 도시이다. 텔 발라타는 수가성 여인이 물을 얻기 위해 정오에 걸었던 야곱의 우물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며 유적지 중심에는 여호수아 시대의 신전터가 남아 있으며 비스듬하게 깍여진 비문이 하나 남아 있다. 








사진: 비문 (여호수아의 비문일까??? 이스라엘 바르일란 대학 "하기" 교수는 이 비문이 여호수아의 비문이라고 주장을 한다) 




사진: 텔 발라타 전경 (www.tellbalata.com 에서 발췌한 사진)



사진: 텔 발라타 뒤 에발산에 있는 아랍 마을




사진: 에발산


야곱의 우물이 있다는 그리스 정교회는 들어갈 수는 있으나, 야곱의 우물은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을 가려가면서 찍게 혹은 못찍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진 찍는 것은 포기하고 우물 물만을 마시고 왔다. 그날 나는 더 이상 물을 마시지 않았다. 예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한 말이 기억나서이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사진: 세겜 (나블러스) 시내



사진: 나블러스 시장 









사진: 세겜 근처 아랍 마을 






사진: 세겜의 아이들 








사진: 부르킨(Burqin)그리스 정교회 (열명의 문둥병자 사건 교회 -눅 17장 - biblia.co.il 에서 발췌한 것임)



사진: 부르킨에서 바라본 갈릴리 지역 



사진: 요셉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