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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왜 예수께서는 명절(초막절) 끝날 생수의 강을 외치셨는가?

때는 초막절 끝날이었다.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과 온갓 소문들이 갈릴리뿐 아니라 예루살렘 길거리 이야기들의 화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예수의 형제들은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 큰형 예수가 못마땅하였고, 예수의 공생애 사역을 통해 드러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믿지 않았다. 아마 마리아는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임신하게 되었는지 (눅1장)에 대한, 역사상 단 한번 있었던 그 사건을 예수의 형제들인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그리고 딸들 (마 13:55-56)에게 알리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 신비스런 출생의 비밀을 말한다 한들 믿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진: 나사렛 수태고지 교회의 목공(석공) 예수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 역시 자녀들에게 예수 출생의 신비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성서에서 요셉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눅 2장 48절이다. 예수께서 12살 되던 해에 유월절날 그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이야기중에 저자 누가는 예수의 아버지 요셉을 언급한다.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의 공생에 사역중에 가끔 그의 가족이 등장하지만 요셉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요셉은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눅 4장 22절에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라는 기록이 있지만 요셉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예수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이름을 부를때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불렀기 때문이다 [예 - 예슈아 벤(혹은 바르) 요셉 - 요셉의 아들 예수]


 시몬 깁슨이 쓴 "The final days of Jesus" (한글판 "예루살렘의 예수")에 의하면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이사를 가서 사셨는데 (요 2:12) 그 이유가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전했던 메세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눅 4:16-30). 당시 나사렛 동네 사람들은 예수께서 자신이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라고 밝히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예수를 끌고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죽이려고 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예수께서는 그의 가족과 함께 나사렛에서 가버나움 (나사렛에서 가버나움까지는 약 65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으로 이사를 가셔야만 했다면 그 형제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자, 예수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형제들과 함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가버나움에 사는 동안 초막절을 맞이하게 되었고 형제들은 예수께 비아닝 거리듯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라고 말한다. 형제들은 예수께 "당신이 정말로 메시야라면, 우리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했던 것처럼 이제 예루살렘에서도 해보시오. 당신은 웃음거리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요!" 라고 조롱하였을 것이다. 그들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 (요 7:5).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시내와 길거리에서 군중들이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 수군거리는 말들을 들으셨다 (요 7:25-36). 유대 당국자들은 군중들 틈속에 있는 예수를 잡으려고 하수인들을 보내었고 긴장은 최고조로 달하였다. 


그렇게 초막절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명절 끝날 예수께서 성전에 서서 이렇게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7-38). 


왜 예수께서는 "생수의 강"을 초막절 끝날 외치셨을까? 요한은 그 생수의 강이 훗날 예수의 제자들이 받게 될 성령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요 7:39). 생수 = 성령. 이런 등식이 성립되는데 예수께서 "생수" 즉 물에 관한 말씀을 초막절에 하신 것은 분명 이유가 있어서이다. 



사진: 대제사장이 실로암에서 금대접에 물을 떠 가는 의식 


성서 시대에는 전통적으로 초막절을 맞이하면 명절 끝날 대제사장이 실로암못에서 떠온 물을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을 갖는다. 대제사장은 물을 부으면서 이른비와 늦은비를 간구한다. 때는 10월경 아직 이른비가 내릴 때는 아니지만 대제사장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 신명기 11장 14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사진: 성서 시대의 초막절 행사 


이스라엘은 초막절이 지난 후에 농사를 지을 준비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이른비이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초막절을 맞이해서 비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탈무드에 의하면 (요마 43b) 대제사장은 초막절 성소에서 비를 위해 간구할때 길게 기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기도를 길게 드리면 밖에서 지켜보는 백성들이 혹 대제사장에게 무슨 일이 생긴것은 아닌지, 혹 하나님의 진노가 있기 때문에 기도를 길게 드리는 것은 아닌지 해서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다음과 같이 짧게 비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우리의 주되신 하나님이시여 올 해도 많은비를 내려 주소서. 무더운 날씨속에서도 많은 비를 내려 주소서" 








비와 성령! 


대제사장은 그해 하나님께서 내려주셔야 할 이른비와 늦은비를 간구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마음에 영원히 거하실,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간구하셨다. 


이 예수의 외침을 들었던 무리들은 예수께서 그 선지자 되심을, 혹은 메시야가 아니신가 하여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갈릴리에서는 메시야가 나올 수 없다는 말로 되받아 치기도 하였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군중들은 과거 요엘 선지자가 전하였던 하나님의 말씀을 떠 올렸을 것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비를 넣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비와 늦은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요엘 2:18, 23, 28-29).





그러나 군중들은 말만 분분할뿐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어떤 이들은 예수를 잡고자 하였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잡아오지 못하였던 하수인들을 질책하였다.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라는 냉담한 그들의 반응이 있었으나, 성서의 사건은 훗날 예수께서 메시야 되심을 이렇게 확증한다. 


오순절 날 예수의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은 후 베드로는 과거 초막절때 예수의 외침을 들었던 무리들과 세계 각국에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왔던 무리들에게 예수의 메시야 되심과 요엘 선지자가 예언하였던 하나님의 신의 임재를 증거하였다. 베드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 2:36)


예수의 주(Lord) 되심과 그 분의 그리스도 (Christ) 되심이 선포되던 그 날 예수의 제자들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도 성령의 임재가 있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초막절 4일째 되는날 대제사장의 축복 기도 행사를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행한다. 여전히 대제사장 역할을 하는 랍비는 이른비와 늦은비를 간구한다. 여전히 그들은 해마다 내릴 비를 간구할 뿐이다. 짧막한 그들의 기도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영생을 주는 생수의 강이다. 그 통곡의 벽위 성전산에는 2천년전의 예수의 외침이 여전히 남아 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 생수의 강이 열방 곳곳에 넘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