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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시대의 징조 선지자 이사야

이름과 삶이 시대의 징조(sign)가 되었던 선지자 이사야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그는 2700여년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던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 살았다. 솔로몬 이후 최고의 경제부흥을 일으켰던 왕 웃시야가 죽던 해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고,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6:8)”라는 답으로 소명을 받은 후 그는   60년 동안 남유다에서 선지 활동을 하였다. 그의 메세지는  주로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때는 735년경 앗수르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국가들은 반 앗수르 연합군을 조직하고 있었다. 시리아의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의 베가가 중심이 되어 조직된 반 앗수르 연합군에 남유다의 왕 아하스가 동참하지 않자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이 남유다를 공격하였다 (The Syro-Ephraimite War. 735-2 B.C). 아하스가 예루살렘 성밖까지 진격해 내려온 연합군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을때 이사야는 자신의 아들 수알야숩과 함께 아하스를 만나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였다(7). 그 유명한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징조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 전쟁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하스에게는 앗수르의 창과 칼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결국 그는 예루살렘에서 약 1,100km나 멀리 떨어진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하고 앗수르의 종이 되었다. 아하스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외면하였다.


사진: 산양 


이사야의 아들 수알야숩은 남은자가 돌아올 것이다라는 뜻인데 이 이름에 담긴 징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즉 남은자가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베풀어주신다 는 뜻이면서 동시에 남은자라는 것은 구원이전에 심판이 있을 것을 암시한다. 마친가지로 하나님의 징조 임마누엘역시 얼핏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구원을 보장하는 징조이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심판을 의미하기도 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에녹에게는 기쁨의 소식이지만, 하나님을 피해 숨었던 아담과 하와에게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이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아하스가 믿음이 아닌 앗수르 군대의 힘에 의지하자 하나님께서는 아하스가 무릎을 꿇었던 앗수르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어 아하스와 그의 백성들을 벌할 것을 이사야의 다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제 곧 멸망할 것이다)의 이름을 뜻을 통해 징조로 보여 주셨다( 8). 결국 아하스는 주전 715년 앗수르의 종으로 살다가 죽었다.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남유다의 왕이 된후 몇년 뒤 (주전 712/1년경)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의 징조 역할을 하라고 말씀하신다(20). 이 징조는 애굽과 구스가 결국 앗수르의 손에 의해 멸망을 당할 것을 예언함과 동시에 애굽의 힘을 빌어 앗수르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던 히스기야를 향한 경고였다. 그러던 중 주전 702/1년 경 앗수르의 산헤립은 자신에게 바치던 조공을 끊고 등을 돌린 히스기야를 징벌하기 위해 군대를 끌고 예루살렘 근방까지 공격해 올라왔다.



사진: 까마귀 


이때 이사야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구원을 히스기야에게 선포한다.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37:35). 산헤립의 십팔만 천의 군사들은 하루 아침에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산헤립 역시 니느웨로 돌아가 암살을 당했다. 이후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게 된다. 앗수르와 죽을 병으로부터의 구원을 받았던 히스기야는 바벨론에서 찾아온 사신들에게 자신의 부귀 영화를 자랑하다가 교만이라는 암보다 더 무서운 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사야는 이런 교만병에 걸린 히스기야를 향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한다. 하나님의 채찍 바벨론이 오고 있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약 100년뒤 결국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손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사야는 그의 시대를 향한 메세지를 뛰어넘어 약 150여년 이후 바벨론에서 돌아올 유대 백성들을 향한 위로와 소망의 메세지를 전한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40:1).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늘 구원으로 연결되었고 백성들은 예언대로 유다땅으로 돌아왔다.


사진: 사반


이사야는 전쟁. 불신. 부정. 부패. 타락의 시대를 향해 벗은 몸과 벗은 발로. 그리고 자신과 아들들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징조를 보여주었다. 예배와 제사는 있었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불법과 죄악의 온상. 그 가운데 살면서 그는 시대의 하나님의 거울이 되어 타락한 헛믿음의 모습을 들추어내는 징조 역할을 감당하였다. 멋 훗날 이야기이다. 광야에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은 그보다 700여년전에 살았던 시대의 징조 이사야의 글을 꺼내들었다.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그렇다 이사야는 광야의 소리로 광야에서 하나님의 징조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사야는 므낫세에 의해 톱질을 당해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대의 징조 이사야는 세상을 떠났지만 하나님의 또 다른 부르심이 여전히 우리 귓가에 울리고 있다. 우리 시대 하나님의 징조를 세상에 보여줄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는 질문에 답할, 시대의 징조가 될 예수의 사람을 주님은 찾으신다고.

*** 위 글은 기독교 잡지 "새가정 1월호"에 연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