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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3): 고대 (예수님 당시와 후대) 갈릴리 바다 선착장들은 몇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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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초 탐험가들이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갈릴리 바다의 장소들을 찾으면서 당시 선착장들을 찾으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근 25년동안, 다시 선착장들을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한 결과 우리는 선착장들과, 선착장으로 가는 길, 그리고 방파제등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닺,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사용한 계류 돌들 (the mooring stones), 물고기의 무게를 다는 저울등을 발견하였다.

최근 갈릴리 바다는 드라마틱하다고 할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캠핑 장소들, 인공으로 만들어진 해변가, 호텔등이 수천년동안 지켜왔던 자연 그대로의 바닷가에 변화를 준 것이다. 오늘날에는 4개의 작은 항구들이 모터 보트, 순례객을 위한 배, 그리고 고기잡이 배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옛적 갈릴리 바다에는 적어도 16개의 선착장이 있었고 이 선착장들은 , 고기 잡이, 교역품들의 운송, 교통 수단등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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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학 자료들은 - 신약성경, 요세푸스의 글, 탈무드와 같은 랍비 문헌- 2천년전, 갈릴리 바다에 수백척의 배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자료들은 헬리니즘과 로마 그리고 비쟌틴 시대 (332 BCE -630 CE)의 선착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 아마 고대 역사가들이 선착장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고대 선착장들은 그 기초석만을 볼수 있을 뿐이다. 대부분은 갈릴리 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현무암으로 선착장들이 만들어졌다.

선착장 건설은 조직화된 기술과 경제적 계획이 필요하였다. 방파제가 먼저 건설되고, 선착장과 그 도로, 배를 수리하는 수리소, 행정관서, 저장고, 통행료 징수소, 망대, 그 밖에 관련 건물들이 건설되었다.

첫번째로 발견한 선착장은 거라사 ( Kursi)로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께서 바다를 잠잠케 한 후 갈릴리 동편에 있는 거라사에 방문하셔서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해주었다는 마을이다. (눅 8:22-39, 막 5:1-20, 마 8;28-32).

1970년대 거라사 발굴을 통해 고대 교회와 수도원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발굴 당시 수위가 높았기 때문에 해수면 아래쪽 조사를 통해 선착장의 방파제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갈릴리 선착장의 중요한 한 요소는 방파제로 갈릴리에 자주 불어오는 폭풍으로부터 배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바다 안쪽으로 뻗어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눅 8;23 참조)

거라사에서 발견된 두터운 층의 선착장은 이곳이 로마와 비쟌틴 시대때 전형적인 어촌이었음을 알려준다. 현무암으로 쌓아올려져 만들어진 선착장은 북쪽에 어선이 바로 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수로를 이용해 물을 저장하였다.

선착장 북쪽에서 발견된 대리석 기둥들과 모자이크 장식은 이곳에 유대 회당이 있었을 것이다 (400 - 700년 사이). 거라사 선착장은 여름철에는 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겨울철에는 유적들이 물에 잠긴다. 이로 보건데 당시 선착장이 있을 당시에는 수위가 낮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갈릴리 바다의 대부분 고대 선착장은 오랜 기간동안 물속에 잠겨있었기 때문에 최근까지 그 모습을 제대로 알수가 없었다. 방파제의 기초석은 수위가 가장 낮을때 건설된다. 비록 방파제 높이가 10피트가 된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에 걸친 파도로 인해 파괴되고 결국 오늘날에는 그 기초석만을 볼수 있을 뿐이다.

지난 천년간에 걸친 물의 방출은 자연스럽게 수위의 변화를 가져왔다. 요단강으로의 물의 방출 위치는 긴네렛에 있는 마을이다. 하지만 물의 방출로 인해 키부츠 드가니아쪽에 있는 물길의 침적토를 쓸고 내려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결국 요단강으로 나아가는 상부는 좁고 깊은 물줄기로 바뀌게 되었다.

복음서에 의하면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 중심지였다.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에서 예수님은 설교를 하였고 (막 1:21), 병든자를 치유하였다 (막 2:3-12).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머물렀으며 그곳에서 많은 병든자들을 치유했다고 기록한다. 프란시스칸 수도회에서 오랫동안 가버나움 발굴을 하였는데 약 50년전 그들은 베드로의 집이라 알려진 곳에 교회 건축을 시작하였다. 봄에, 프란시스칸 고고학자들은 더 이상 교회 건축을 하지 말라는 종용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물 수위가 높아져서 위험하였기 때문이었다. 베드로의 생가라고 알려진 곳의 위치를 통해 고대 바다의 수위가 현재보다 낮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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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10세기경까지 가버나움에는 약 0.5 마일에 걸친 해변이 있었다. 비록 가버나움에 선착장이 있었겠지만, 지형상 선착장이 들어서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가버나움에서는 안전한 선착장을 건설하기 위해 돌들이 제거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폭풍으로부터 해변을 보호하기 위해 선착장 길은 반드시 수위보다 적어도 2 피트정도 높아야 했다. 1932년 티베리야스에 건설된 선착장 길은 수위보다 2 피트 정도 높다. 고대 가버나움의 경우는 선착장의 높이가 약 3피트 정도 현재 수위보다 낮은데 이 역시 당시 바다가 현재보다는 수위가 낮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겨울이 되면 가버나움의 어부들은 타브가에서 고기 잡이를 하였는데 이는 약간의 온기가 있는 담수 샘물이 나오기 때문에 흔히 베드로의 고기라는 어족이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수위가 내려가면 고대 선착장의 방파제 일부를 볼수가 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난 장소가 바로 타브가라고 한다. 어부들의 입장에서 볼때, 이는 올바른 선택이다. 왜냐하면 "베드로 고기"가 겨울과 봄철에 이곳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기 위해 그리고 부활한 후에 만나셨다.(눅 5:1-7, 요 21:1-8). 현재 베드로 수위권 교회라고 알려진 바위터에는 4세기 중엽에 교회가 세워졌었고 교회내의 바위는 "주님의 식탁" (멘사 크리스토스)라고 불린다 (요 21:13).

마그달라(Magdala)의 다른 이름들 역시 어부들이 사는 마을이었음을 알려준다. "미그달 눈이에" (고기 망대)와 타리케아 (헬라어 - 고기절이는 장소). 요세푸스에 의하면 마그달라에는 많은 배들이 있었고, 조선소와 목재 공급소도 있었다. 제 1차 봉기때, 마그달라는 젤롯인들의 본거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마그달라 선착장은 프란시스칸 수도자들에 의해 발견이 되었는데, 이들은 1세기 당시의 건축물과 거리 그리고 광장을 발견하였다. 이 곳은 현재 막달라 마리아의 마을로 불린다. 한 집에서 그들은 배 모양이 장식된 모자이크를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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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경 수시타는 천연 요세가 있었다. 미드라쉼에 의하면 수시타의 낮은 쪽에 선착장이 있었는데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배길을 통해 1세기 중엽 갈리리의 수도인 티베리야스로 운송되었다. 또한 갈릴리 서쪽에서 골란으로 가는 여행객들을 운송하기도 하였다.

가다라는 갈릴리 바다에 위치한 도시중 헬레니즘 문화가 꽃을 피우던 도시로 야르묵강 위 길르앗 상부에 있는 도시이다. 도시의 선착장은 갈릴리 바다 남동쪽에 자리하였는데 현 지명은 하온 홀리데이 빌리지 (텔 사마라)이다. 가다라의 선착장 유적지의 규모는 수시타보다 컸다. 가다라의 해양 산업은 그곳에서 발견된 동전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 동전들은 약 250년 동안 행해진 배와 관련된 놀이를 표현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도시의 선착장인 텔 사마라는 배들의 정박지였을뿐 아니라 2세기경의 동전에서는 가다라의 거주민들을 위한 해상 전쟁 놀이의 증거를 볼 수가 있다. 최근까지, 연구자들은 이 놀이가 야르묵강에서 행해진 것으로 짐작하였는데, 발견된 유물이 없기 때문에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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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2세기경 로마의 전쟁용 배가 새겨진 동전 - 발견 장소: 가다라

가다라의 선착장은 하마트 가다르 (갈리리 남동부에 위치한 온천)에 방문하기 위한 수천명의 여행객들을 위해 사용되었음에 틀림없다.

1989년과 1991년 사이의 가뭄으로 인해 더 많은 고대 해변가의 모습들이 들어났는데 그 중에는 티베리야스 선착장도 있다. 티베리야스는 신약성경에 언급된 도시로 (요 6:1, 21:1) 요한은 티베리야스 (요 6:23)에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건너편으로 건너왔다고 기술한다. 티베리야스에서 주조된 동전들에 새겨진 그림중에는 돛, 토기 그리고 다른 바다와 관련된 상징들, 게다가 헬라 신화에 나오는 포세이돈까지도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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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2세기경 티베리야스에서 주조된 동전으로 로마식 배와 돛을 동전에 새겨 넣었다.

시대가 흘러 아랍정권이 팔레스틴을 통치로 인해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을때 갈릴리의 선착장들은 점차적으로 잊혀지게 되었고 지속적인 파도로 인해 방파제는 파괴되고 결국 선착장들은 그 흔적만을 남기게 되었다.

본글은 Nun, Mendel, "Ports of Galilee," Biblical Archeology Review, Jul / Aug 1999 를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