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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유대인(Jew)과 이스라엘인(Israelite)




야곱의 첫번째 부인 레아의 네번째 아들, "유다"는 그의 후손들의 지파를 지칭하는 명칭이 된다. "유다" 라는 명칭은 성서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한편 "유대" (히브리어 - 에후디) 라는 명칭은 초기 성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후기 성서 작품속에 간간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열왕기하, 예레미야, 스가랴, 느헤미야, 에스더 그리고 역대기서 - 참고로 에후디 라는 단어는 구약성서에 88번 등장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다 라는 단어에서 "유대인"라는 말이 파생되었으며, 어떻게 이스라엘 한 지파의 명칭이 전 유대 민족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는가? 


유대라는 명칭은 북 이스라엘 왕국과 분리된 이후에 한 지파를 가리키는 명칭으로뿐 아니라 남쪽에 자리하고 있던 유대, 베냐민 (일부), 그리고 시므온 지파로 구성된 왕국을 가리키는 유대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된다. "유대인"라는 용어는 유대 왕국의 초기 단계에 그 왕국의 전체 시민을 총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이름들 예를 들면 "유다의 사람들" 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삿 15:10에는 " 유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가 우리를 치러 올라왔느냐" 라고 말한다. 성서에서 처음으로 "유대인"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왕하 16:6이다 "그때 시리아의 르신왕이 엘랏을 시리아로 회복시키고 엘랏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었으므로, 시리아인들이 엘랏으로 가서 오늘날까지 거기에 거하였더라"  "유다 사람"과 " 엘랏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었으므로" 라는 표현에는 일종의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인" 이라는 말이 "유다 사람"이라는 말을 대체하였다. 


주전 733년 앗수르와 왕 살만에셀은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배시키기 시작하였고, 그의 후계자인 사르곤 2세때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배는 완료되었다.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남 유다 왕국만이 남게 되는데,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열 지파는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사라져 버리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는 남겨진 유대 왕국의 시민 뿐이었다. 


따라서, "유대인"라는 단어는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즉 왕국에 속한 한 지파의 명칭에서 민족의 기원을 칭하는 명칭이 되었다.바벨론 유배 당시의 문학 작품이나 유배 시기 이후에 기록된 문학에서는 이런 증거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성서들 중, 에스더서 - 기록 시기는 학자들에 따라, 페르시아 시대로부터 헬라 시대까지 견해가 다르다 - 에는 "유대인"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유대인" 라는 용어는 더 이상 한 지파를 지칭하는 명칭이 아니다. 예를 들면, 하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고하기를 한 백성이 왕의 왕국 각 지방들에 백성 가운데 흩어져 산재하고 있는데, 그들의 율법이 온 백성과 달라서 그들이 왕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나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용납하는 것이 왕의 유익이 되지 못하나이다" (에스더 3:8). 여기에서  "유대인"라는 용어는 전체  "민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서에 나타나는  "유대인"의 빈도수 (성서 후기 작품에만 단어가 나타난다) 


또한, 모르드게를 소개할때 역시 "유대인"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 역시 전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때 수산 궁에 한 유대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모르드게로 베냐민이요, 기스의 증손, 시므이의 손자, 야일의 아들이더라" (에스더 2:5). 고대 지혜자들은 이 성서의 표현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 구절은 지파의 구분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 (모르드게)의 아버지는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그의 어머니는 유다 지파의 출신이다 (메길라 12b). 하지만 라쉬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모르드게는 베냐민 지파 출신이므로 "베냐민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 히자만 그가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유배되었으므로, 그가 유다 지파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이라고 불린 것이다. 


느헤미야서는 주전 528년 페르시야 고레스 왕이 명한 유배로부터의 귀환 사건을 기술한다. 느헤미야서에 등장하는 사건은 주전 445년 즈음에 관한 것인데, 성서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들" 이라는 말은 지파나 지역 구분이 아닌 전 민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대인" 이라는 용어는 실제로 유대 왕국의 주 시민층이였던 유다 지파만을 칭하는 것이 아닌, 지파들의 경계선을 넘어 전체 백성을 총칭하는 용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대 왕국이 바벨론으로 유배 당하였을때,  한 지파를 총칭하는 명칭에서 민족 전체를 뜻하는 용어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유배에서 귀환할 당시에는 이미 전 민족을 뜻하는 용어가 되었다. 


제 2차 성전 시대 후기에, "유대"라는 말은 전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이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 이라는 말 역시 사용되었다. 아리스토불르스 1세, 알렉산더 야나에우스, 그리고 헤롯 당시의 화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대제사장 에후다/ 에호나탄, 유대인 위원히"  또한 128년 바브타 바라트 시므온의 결혼 증서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모세와 에후디의 법에 의하면." 이와 비슷한 결혼 증서가 주후 1세기 경에도 나타나고 힐렐 시대에도 등장한다. 



사진: 갈멜산에 있는 엘리야 기념 예배당입니다. 


하지만, 타나임 시대 (The Period of the Tannaim) 시대에 가서는 "이스라엘" 이라는 용어가 전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등장하고 "유대" 라는 용어는 덜 사용되게 된다. 타나임 시대의 문학 작품에는 "유대"라는 말이 겨우 10번도 채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는 수백번 등장한다. 


탈무드 시대 연구 전문가인 므나헴 카하나 교수에 의하면, 바르 코크바 봉기 이후에 의도적으로 "유대인" 대신에 "이스라엘"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제안한다. 바르 코크바는 화폐를 주조하면서 "이스라엘 왕국" 이라는 말을 새겨 놓았는데, 그 이유는 정치적으로 왕국을 더 확대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유대 왕국이라고 할 경우, 성서 시대의 남 유대 왕국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국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분열 왕구기 이전의 영토 회복을 열망하였다) 한편, 아바 벤 다비드 히브리어 언어 교수는 용어를 바꾸어 사용하게 된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으며,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는 아람어가 주로 사용되었고 "에후다이" (에후디의 아람어)라는 용어가 계속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타나임 시대 이후 "이스라엘" 이라는 말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와 함께 "유대인" 이라는 말은 덜 사용되었다. 


위 글은 번역한 것입니다: 


Orit Avnery is a PhD student in the Department of Bible at Bar Ilan University and is a Research Fellow at the Shalom Hartman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