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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Diary

길이름에 생명을....

네비게이션만 있으면 어느 곳이든지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세상이다그런데 난 아무래도 예외인듯 하다차에 네비게이션이 없을뿐 아니라구글맵으로 미리 갈 지역을 검색한 후에 가지만 아직도 아날로그 세대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차를 세우기와 묻기를 반복하며 찾아간다때로는 지도책에 의지하지만 이것 마져도 확신없이 헤매이기 일수이다다행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길을 잘 알려준다문제는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체 하는 아체족들이 있기 때문에 돌다리 두둘겨보는 식으로 묻고 또 묻곤한다얼마전에 예루살렘에서 약 한시간 정도 떨이진 지중해변 도시 텔아비브 욥바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함께 동행하였던 선교사 부부와 함께 욥바를 방문하고 늦은 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도중평소 길을 헤매는 병이 도졌다.


사진: We Will Return  - 여리고에 있는 열쇠 조형물입니다....

사실 나는 심각한 길치이다. 전에 학생 수련회의 선발대로 출발해서 후발대보다 한참 늦게 도착하여 학생들의 따가운 눈총을 한몸으로 받았을 정도이니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길치병 환자에게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방통행표시이다.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올수가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시내 도로는 일방통행 투성이다. 남자의 자존심이란, 몰라도 아는체 하면서 가야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이내 자존심을 싹둑 잘라버리고 주유소로 들어갔다. 예루살렘을 간다고 했더니 직원이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 준다. 말한대로 따라 갔더니 이내 예루살렘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예루살렘이 내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있는 길 거리 이름이었던 것이다. 화를 낼 수도,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상황속에 빠져버렸다. 누구를 탓하랴! 길치인 내가 매를 맞아야지.

그날 힘들게 내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무사귀한한 후 이스라엘 길거리 이름들 속에 숨어 있는 사연과 역사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이스라엘 도로명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도로 명칭과 관련된 따끈 따끈한 기사들이 뜬다. 그냥 주어진 이름은 없다. 다 크고 작은 역사가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과 갈등의 흔적들을 길거리 이름에서 조차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인기있는 길거리 이름은 자보틴스키와 헤르쩰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건설을 위한 초석을 다진 시온주의 운동 지도자들이다. 둘다 이스라엘 독립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이름은 독립한 이스라엘의 길거리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성서 인물들도 길거리에서 살아 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윗, 솔로몬, 그리고 사울등이 도로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다.


사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도인 라말라에 있는 분리 장벽....

이스라엘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유발 벤암미는 그의 블러그에 Myth and murder in Israeli street names (이스라엘 도로명에 숨겨져 있는 신화와 살인) 라는 글을 통해 이스라엘 길거리 이름을 비판하기도 한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옆동네에 프렌치 힐이라는 동네가 있다. 1967 6일 전쟁 이후에 세워진 이 동네는 과거 아랍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이 동네에는 에쩰, 하가나, 그리고 바르 코크바 라는 길거리 이름들이 있다. 이들 거리 이름의 공통 분모는 이스라엘 독립과 관련된 전쟁 영웅이나 집단을 기념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벤암미의 눈에는 무고한 생명들을 죽인 테러 집단 혹은 인물일 뿐이다. 영웅인가 아니면 원수인가? 이스라엘 길거리 이름이 된 역사적 인물들을 마냥 영웅시하기에는 현실 세상이 너무나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 참 어렵고 정답도 없다.

팔레스타인의 길거리 이름은 어떤가? 최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수도인 라말라의 중심 도로 명칭을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설전을 벌어졌다. 문제가 된 도로명은 에히야 아야시 (Yehiyeh Ayash)” 90년대 당시 팔레스타인 지하조직이었던 하마스에서 활동하던 엔지니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폭탄 제조 전문가이다. 그는 90년대 중반 폭탄테러와 로켓포 공격을 배후에서 조정했던 인물로 1996년 이스라엘 정보 기관에 의해 암살당했다.  바로 그 폭탄테러 전문가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는 그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개명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정부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에게 뭐라 한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대변인은 이스라엘의 길거리 이름들 중 수백개가 제 1차 중동 전쟁 (혹은 이스라엘 독립전쟁, 1948) 전후 팔레스타인들을 죽인 인물들이나 단체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는데 그런 나라가 무슨 딴지를 걸수 있냐 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길거리 이름들 중에는 손에 피를 묻힌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 거리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 길거리 이름속에 숨겨진 의미를 과연 알고 있을까? 아니면 배우면서 자랄까? 그 앎과 배움은 서로를 향한 어떤 감정과 행동을 취하게 만들까? 두렵다. 성서 인물중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는 살인당함을 면할 수 있는 표를 받았다. 그의 5대손인 라멕은 자신의 손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에 살인을 면하기 위한 스스로 면죄부의 표를 매 달았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4:24). 이들이 영웅이든 살인자이든 다른 한편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들이었다. 현대판 가인과 라멕으로 길거리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나, 죽음으로 생명을 주셨던 예수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길거리 이름은 아직 없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죽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의 죽음으로 생명을 주셨다. 그러나 이곳 분쟁의 땅에서는 그의 생명을 주신 이의 이름보다 피를 묻힌 이들의 이름이 길거리에서 외쳐지고 또 다른 피를 부르고 있다. 피로 얼룩진 분쟁의 담을 허물 예수 길거리가 만들어질 그 날이 손에 잡힐듯 가깝기만을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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