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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Diary

130장의 천원짜리

오늘은 한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벅스뮤직에 들어가 god의 어머니께와 왁스의 어머니(?) 그리고 mother of mine을 다운 받아서 반복해서 들었답니다.
3개월여 전에 어머니께서 서울에 올라오신적이 있었죠...한번도 아들 집에서 잠을 주무시지 못하고 아주 간혹 올라오시면 일만 보시고 바로 내려갔었습니다. 병상에 계신 아버지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후에 서울에 올라와서 동생집에서 3일을 보내신 어머니 (어머니에게는 어쩌면 10년만에 맞이하는 가장 긴 휴가기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주간에 한국을 떠나기 전 어머니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기로 약속을 하고 서울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때가 거의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시골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기에 무리하여 내려갔죠)
그렇게 오랜 시간 (2시간 여)을 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간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내려오는 동안 어머니는 자식이 운전하다가 혹 졸을까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이야기 도중에 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등록을 하는 날이 되었을때 어머니께서 주셨던 130장의 천원짜리 지폐가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어머니께 "엄마 그것 기억나요? 전에 고등학교 입학금으로 천원짜리 130장 주신거요. 그때 생전 처음으로 그렇게 큰 돈을 만져봤다고 말했죠..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은행에 가서 그 돈을 데스크에 쏟아놓고 한장 한장 세서 주었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죠...그때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왜 천원짜리로만 준줄 아냐고? 저는 알턱이 없었습니다. 늘 술을 즐기시던 어버지 몰래 뒤뜰 장독대에 돈이 생길때마다 모아두셨다고요..장독대가 어머니의 저금통장이었던 것입니다. 혹 아버지께 들킬까봐 조마 조마하며 그렇게 130장을 모았다고요....
저는 앞에 앉고 어머니는 뒤에 앉았기에. 어머니는 보지 못했겠지만 저는 온 몸에 전율을 느끼고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답니다. 그렇게 그 분은 자식 공부를 시키겠다고 한푼 두푼을 모으셨던 것입니다.
한때는 어머니의 자식 걱정이 부담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늘 밥 먹었냐? 라는 말을 전화 통화중에 몇번이나 하는 줄 모를 정도로 걱정이 많으시죠...이곳 이스라엘에서 전화를 할 때도 말입니다.
한국을 떠나 오기전 어머니는 공항으로 배웅을 나오고 싶어했지만 그 분 스스로 참아야했습니다. 혹 아들앞에서 눈물을 흘려 아들 마음을 아프게 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말입니다.
가끔은 지난 날들을 회상하며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마치 한번 흘러간 물이 되돌아올 수 없는 것처럼 어머니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어찌 제가 그 무엇으로 다시 되 돌려드릴 수 있을까요?
요즘 어머니는 (사실 제 어머니는 글을 모르시죠 게다간 시력도 엄청나게 나쁘고요) 교회에 아침 저녁으로 나가십니다. 자식이 떠나기 전에 간곡히 부탁해서 나가신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죠...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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