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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무게 중심 성경에는 세 종류의 리더가 있다. 왕,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이다. 리더에게는 권력이 주어진다. 그 권력이 한 인물에게 집중되면 그 권력은 부패를 양산한다. 그래서 성경은 권력을 분산하며 서로를 향한 균형감있는 견재를 하게 한다. 왕은 정치 권력자이다. 제사장의 권력은 종교 지도자로 성전과 제의, 거룩과 성결을 주관한다. 선지자는 토라를 근거로 부패한 권력과 타락한 백성에 대한 비판과 회개를 촉구한다. 이 권력의 트라이엥글이 무너지고 무게 중심이 왕에게 쏠리는 것에 성경은 단호하게 경고한다. 신명기 17장 14-21절은 장차 이스라엘이 왕정 국가를 세울 때, 왕의 자리에 앉을 자에 관한 지침이 기록되어 있다. 이 지침은 왕이 해서는 안될 일들에 대해 기술한다. 왕은 말을 많이 두지 말고, 아내를 많이 두지.. 더보기
구약 성경 연대기 더보기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성경의 완성은 책상머리가 아닌 시장 골목이라는 유대인들의 말대로 흰 종이에 검은 잉크의 집합체인 말을 생활 현장에서 실천할 때 성경이 진정한 의미가 있음이 평범한 상식이 되어야 한다. 최근 현직 여 검사가 어느 뉴스 인터뷰에서 폭로한 Me Too 말미에 성추행 당사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남겼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 그 말이 여전히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교회 예배당에서의 회개가 검은 지하에서 돈세탁을 하듯 회개자의 마음만 씻어주지 않나 라는 생각이 가슴 한 복판에서 떠나지 않는다. 회개를 뜻하는 성경 언어인 히브리어는 “슈브”로 ‘돌아가다, 돌이키다’ 의 뜻이 있다. 성경 레위기 6장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 배상을 명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지울.. 더보기
잡석 VS 다듬어진 돌 쉰들러 리스트. 영화의 엔딩 OST “예루살라임 셀 자하브 (황금의 예루살렘)”와 함께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들이 손에 작은 돌을 들고 오스카 쉰들러의 무덤 앞으로 걸어 온다. 그 돌들은 쉰들러의 묘지 비석위에 하나 둘씩 올려 진다. 왜 유대인들은 묘지에 꽃이 아닌 돌을 올려 놓을까? 이스라엘의 돌의 나라이다. 여기 저기를 돌아봐도 돌 뿐이다. 돌은 파란만장한 이스라엘 역사와 늘 함께 하였다. 돌은 이스라엘 민족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의 심장 예루살렘은 돌-도시이다. 구도시의 옛 성은 돌산 위에 세워졌다. 영국이 오스만 투르크를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낸 뒤, 1918년에 최초 예루살렘 총독이 된 로날드 스토레스 (Sir. Ronald Storrs)경은 고대 유적을 .. 더보기
예수 시대의 성전세 (반 세겔)은?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출 30:13-14). 이스라엘 민족 절기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국 각처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 그리고 장사로 한몫 잡기 위한 장사꾼들의 발걸음 소리가 예루살렘 영문밖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예수와 제자들 역시 여리고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촉하여 계곡길과 산지길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해수면보다 약 250미터나 낮은 곳에 위치한 여리고에서 800미터 가까운 산지에 있는 예루살렘까지 가는 약 30 킬리미터의 길은 하루만에 가.. 더보기
아브라함 -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창 13장)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 12:10)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창 12:16)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창 13:1-2)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아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던 날을 성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 12:5) 사진: 텔 브엘세바 (이스라엘 네게브 지역) .. 더보기
삼백예순다섯날의 사랑온도 새해가 밝았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달력 첫 장에는 2016년 1월. 삼백예순다섯날의 첫 시작을 알리는 가냘픈 숫자 ‘1’ 뒤로 어깨동무를 하듯 줄줄이 둘, 셋, 넷, 다섯…서른 하룻날의 숫자들이 새겨져 있다. 이날들은 ‘내일’을 예고하고, 그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겠지 라는 어렴풋한 소망을 품을 수 있어 좋다. 내일을 알리는 숫자들의 행진이 있는 달력을 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난다. 오래전 누렇게 빛바랜 종이 벽에 매달려 있던 습자지처럼 얇은 일력(日曆)이 있었다. 큼지막한 숫자의 일력은 그 날 하루의 날짜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일력 한장 한장은 그 하루가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거나 위급한 때 화장실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하루살이 일력은 그 하루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 더보기
새해 - 로쉬 하사냐 아침에 메일함을 열어보니 전에 몇번 참석하였던 야다트 예슈아 회당에서 보내는 이메일이 보였다. 로쉬 하사냐 (유대력으로 새해)가 이번 주일이란다. 이스라엘을 떠난지 5년차가 되면서 내 마음은 유대 광야에 머물고 있으려 하나 보이지 않는 광야를 의도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면 안되는가 보다. 거실에 걸려있는 펜던트에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편 137:5)” 를 종종 읽어보면서도 혹이라도 내가 예루살렘을 잊지 않을까 하는 염려 알약을 복용할 때가 된듯 하다. 오랜동안 블러그에 글을 쓰지 못해서 마음도 불편하고 펜대, 아니 키보드를 누르는 손이 무딜대로 무뎌졌다... 야다트 예슈아에서 보내온 로쉬하사냐가 자극제가 되었을까? 전에 궁금하였던 것 한 가지! 성경에서 말하.. 더보기
웃사의 죽음을 통해 보는 부끄러운 리더십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삼하 6:6-7). 왜 웃사는 죽임을 당하였을까?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이십년 동안 머물던 법궤 (삼상 7:2)를 예루살렘 다윗성으로 옮기던중 소 달구지에 실고 가던 법궤가 소의 날뜀으로 인해 떨어지려고 하자 웃사는 법궤를 붙잡았다. 그는 아마 법궤를 보호하고자 붙잡았을텐데 하나님의 진노하심속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여러번 읽고 또 읽어보아도 웃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법궤는 레위인 (고핫 자손)이 메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민 4:15),.. 더보기
예수께서 사용하신 언어는? 11년전 상영되었던 "그리스도의 수난 (The Passion of Christ)"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아람어로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한 부분인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의 만남과 대화에서 그 둘은 라틴어로 대화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예수께서는 아람어와 라틴어를 일상 생활에서 주로 사용하셨을까? 먼저 구약성서에서 사용된 아람어의 흔적을 보자. 구약 성서들 중 일부분 (에스라, 다니엘서)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직접적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는 증거는 없지만 주전 5세기 느헤미야는 국제 결혼을 한 유대인의 자녀가 유대 방언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책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보다 앞선 주전 8세기 (702-701년 사이)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할때 랍사게가 히브리 방언으로 히.. 더보기
말라기 - 요지경이 되어 버린 교회를 향한 외침 말라기(나의 종, 나의 사자-messenger)는 자신에 대한 소개 대신에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1:1) 라는 말로 자신이 전하는 메세지가 누구(하나님)의 것이며, 그 메세지를 수신하는 이들이 누구(이스라엘)인지만을 밝힌다. 말라기가 사역하던 시대 상황은 참으로 암울하였다. 성전 재건 공사를 마치고 나서 약 60-100년 정도가 지났고 성전 재건에 직접적으로 나섰던 이들이 여전히 생존하였다. 그들은 선지자 학개가 전한 하나님의 약속,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학 2:19),” 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활 현장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하였다. 심지어 가난한 이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자녀들을 종으로 팔아야 했고,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 더보기
건물이 아닌 성전된 몸의 회복 - 선지자 학개 주전 586년 아브월 9일: 유대 전통에 따르면 이 날 솔로몬의 성전이 바벨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무너지고 수많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먼 이방인의 땅에서 유다인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 137편).” 포로가 된 유다인들은 눈물로 예루살렘을 그리워 하였다. 주전 537년 일곱째 달(티쉬레이월): 539년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그 이듬해인 538년 유다인들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린다 (스 1:1-4). 이 칙령에 의해 약 5만명 정도의 유다인들이 고향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