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이스르엘 평야 사진: 나사렛에서 바라본 이스르엘 평야 전경. 이스르엘 평야는 이스라엘 열왕기 시대 당시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최대 곡창지대일뿐 아니라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시키는 국제도로가 통과하는 곳이었으며, 물이 풍부한 곳에 위치해 있기에, 이 평야를 차지하고자 하는 전쟁들이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텔 므깃도의 전쟁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삿 4-5 장의 드보라와 바락 그리고 삿 6장의 기드온 사건, 왕상 18장의 옐리야 사건 등등이 바로 이스르엘 평야를 중심으로 있었던 사건들입니다. 더보기
광야의 들꽃 사진: 광야의 들꽃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러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 더보기
호르바 회당 재건 축하식과 예루살렘의 긴장 사진: 최근 재건된 호르바 회당입니다. 그 옆에는 모스크 미네렛(첨탑)이 보이네요. 최근 예루살렘 구도시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종교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2주 전에는 성전산에 있는 알악사 사원에서 금요 기도회를 하던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코텔 (통곡의 벽)쪽을 향하여 돌을 던졌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성전산에 올라간 이스라엘 경찰들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양측에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지난 주 금요일에는 혹 있을 수 있는 폭동을 미리 막기 위해 50세 이상의 팔레스타인 남자들만 알악사 사원에 방문할 수 있도록 임시 조치가 취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자 뉴스에 보니, 구도시내의 유대인 지역에 있는 후르바 회당의 재건이 마무리되어 베냐민 냐타냐후 총리의 미리 녹화된 축하 메.. 더보기
쿰란 사본은 왜 중요한가? 사진: 성서 시대에 사용되던 무게를 재는 "추"입니다. 왜 쿰란 사본 (사해 사본)은 중요한가? 흔히 사해 사본으로 알려진 유대 광야에서 발견된 두루마리들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일컬어진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구약성서의 택스트가 원래 쓰여진 원본에 충실한 것인지 혹은 수정이 가해졌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19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고대 성서 택스트가 없었다. 따라서 유대, 기독교 학자들은 현존하는 구약성서 택스트가 수정되었는가 라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여 왔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라는 계시의 확장을 위한 성서라는 관점과 예수와 관련된 그 어떤 증거도 구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입장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1844년, 위 논쟁이.. 더보기
맛소라 학파의 업적 사진: 제 2차 성전 시대 예루살렘 상부도시의 맨션 모델입니다. 실물 유적을 보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더군요. 맛소라 학파의 목적은, 시대를 걸쳐 전해 내려오는 성서 택스트를 잘 보존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맛소라 학파는 여러가지 일들을 수행했고 결과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맛소라 학파는 성서의 택스트를 결정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들은 성서 택스트의 쓰기, 읽기 그리고 택스트와 읽기 방법의 차이점을 찾고 가장 적당한 것을 선택하였다. 맛소라 학파의 결정은 구절들과 단어들 뿐 아니라, 자음 한자 한자까지도 세밀하게 결정하는 것이었다. 맛소라 학파는 준말로 쓴 단어들 혹은 완전하게 쓴 단어들, 그리고 믿을만한 사본들에 기초하여 성서의 모든 단어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결정하였다. 예를.. 더보기
알레포 사본이란 사진: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유월절 기간에는 슈퍼마켓에 있는 누룩이 들어간 제품들을 하얀 천으로 가립니다. 즉 판매 금지 조치가 취해지는 것입니다. 누룩은 단순히 식품 종류뿐 아니라 치약에도 들어가더군요. 알레포 코덱스는 맛소라 사본들 (모음, 천트 표기, 맛소라 주석들이 포함된 사본들)에 속한 것이다. 사해 사본이 기록된 이후, 위와 같은 형태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택스트는 대략 9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이다. 즉 근 천년 동안, 8세기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게니자 조각들을 (게니자 - 회당에서 읽는 성서중 낡아서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것을 폐기 처분하지 않고 일종의 성서 무덤에 안치시켜 놓는것)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세대를 거쳐내려오면서 성서는 수천개의 사본들로 필사가 .. 더보기
쿰란의 물 수로 시설 몇일전에, 블러그 이사왔습니다. 섬기던 교회 제자 (지금은 다른 교회로 떠났지만)가 블러그를 관리해 주는데, 새로운 블러그를 추천해 주고 직접 이삿짐까지 날라 주었답니다. 아직 정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시험때문에요. 앞으로 시간되는대로 성지와 관련된 사진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그 첫번째로 (맛보기죠) 사해 사본이 발견된 쿰란 공동체가 이용했던 수로 사진 입니다. 오른편 산 중턱에 보면 수로로 이용했던 구멍이 보입니다. 바로 그 수로의 모습입니다. 밑에서 보던것 보다 상당히 커서 몸을 굽히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네요. 이렇게 수로를 만들고 우기철에 내리는 비를 공동체가 사는 마을로 끌여 들여서 미크베 (정결 의식탕)에서 목욕도 하고 식수로도 사용하였답니다. 더보기
성전산의 이슬람 사진: 바위 돔 (흔히 황금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혹 오마르 사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오마르 사원은 예루살렘 성묘 교회 근처에 있는 사원입니다. 바위 돔은 사원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산은 돌 위에 강력한 기도자처럼 서있다. 우마야드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 (685 - 705 C.E)가 세운 이슬람 제단인 바위 돔은 예루살렘의 이전 주인이었던 기독교를 대체하는 이슬람의 상징이 되었다. 바위 돔 뒷편으로 푸른색이 도는 회색 돔 건물인 성묘교회가 보인다. 아랍 정권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이전 성묘 교회는 도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물일 뿐 아니라 가장 거룩한 장소였다. 638년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파함족 출신인 카할리드 이븐 트하비트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 더보기
통곡의 벽에서 잘못 기도하다 잡히면 감옥행? 하아레쯔 인터넷판 신문에 보니, 코텔에서 일어나는 성차별 문제가 실렸네요. 다음은 기사 전문입니다. 코텔 (서쪽벽 혹은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여자들 체포될 위험에 처하다. 한달에 한번, 유대인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인 코텔에서 기도하는 여자들은 체포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동의 화약고로 알려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지만, 유대인들 사이의 종교적인 문제로 인한 성 차별 역시 심각하다. 코텔에서 사역하는 랍비들은, 종교적인 복장, 예를 들면, 야르묵 (키파), 기도 쇼올, 혹은 토라를 갖고 기도하는 것은 오직 남자들에게만 허락된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절대로 이런 복장이나 토라를 갖고 기도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여자들이 코텔에서 종교적인 노래.. 더보기
선물 오늘 한 제자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몇일전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지난 9월에 소포를 보냈는데, 아직 못받았냐고 하더군요. 애구 경제 사정도 뻔히 안 좋은 것을 알고 있는데 이렇게 귀한 선물을 보내주다니 너무나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우체국에 들려서 한 20분정도를 기다렸다가 큼지막한 상자 하나를 받았습니다. 무게가 17킬로나 나갑니다. 이렇게 무거운 것을 집에서 우체국까지 어떻게 옮겼을까요. 집에 와서 선물 포장을 뜯기 전에 먼저 찰칵하고 사진 한장을 찍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간만에 받아보는 택배입니다. 포장을 뜯고 나니, 맨 먼저 보이는 것이 반가운 김과 일회용 커피입니다. 커피가 여기 저기 촘촘하게 박혀 있네요. 그리고 한쪽에 예쁘게 포장된 책이 보입니다. 제목은 "히말라야 도서관" 첫 페.. 더보기
마가의 다락방 사진: 마가의 다락방 한쪽에 있는 기둥에 새겨진 "펠리칸"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미 펠리칸 새는 새끼들에게 먹일 것을 구하지 못하였을 때 자신의 가슴살을 새끼들이 뜯어 먹도록 한다. 이런 전승이 생긴 이유는 펠리칸 새의 부리 때문 이랍니다. 왜냐하면, 펠리칸은 먹이를 잡아서 긴 부리 아래쪽의 주머니처럼 생긴 저장 공간에 넣어 두었다가 새끼들에게 준다고 합니다. 이때 새끼들이 그 부리를 어미 입속에 넣어 먹을 것을 받아 먹는 것을 보고, 마치 어미의 가슴살을 뜯어 먹도록 하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전승이랍니다. 이 펠리칸 새를 마가의 다락방에 장식한 이유는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로 자신의 희생을 제자들에게 .. 더보기
고대 이스라엘의 집 고대 이스라엘의 집 (주전 1200년-586년 사이)은 흔히 4방 구조를 지닌, 기둥이 있는 집 (Four Pillared house or Four Room House)이었습니다. 방에는 2-3개의 기둥이 있으며, 이 기둥들은 방과 방사이를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하게 구분을 짓고, 방들의 뒷편에는 넓은 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집은 햇빛에 말린 진흙 벽돌을 석회암 돌로 만들어진 벽위에 쌓아올렸습니다. 벽면은 석회를 바르고 지붕에는 각목을 대고, 갈대 혹은 나무 잔 가지들을 깛은 후 진흙을 바릅니다. 집 바닥은, 짐승의 우리, 곡식 저장고, 그리고 부엌으로 사용되었으며 바닥에 돌을 깔아 우리의 청결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굴뚝은 없었으므로 불을 때게 되면 연기는 창문이나 문을 통해 빠져 나.. 더보기